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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스포티비뉴스 '한준의 작전판'

[한준의 작전판] '바르사 부임' 세티엔, 캄노우의 승자+크루이프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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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FC 바르셀로나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의 경질을 결정한 뒤, 유명한 감독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시즌 중 부임하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한 인물은 키케 세티엔 전 레알 베티스 감독뿐이었다.

세티엔 선임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발베르데 전 감독은 2015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아틀레틱 클럽에 트로피를 안긴 성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세티엔은 2018년 11월 11일 레알 베티스를 이끌고 캄노우에서 바르셀로나를 4-3으로 꺾은 전력이 있다. 이 패배는 지금까지도 바르셀로나가 안방에서 당한 마지막 공식전 패배로 남아 있다.

세티엔에게 중도 부임은 낯선 일이 아니다. 2015년 10월 강등 위기에 빠졌단 라스 팔마스에 부임해 2015-16시즌을 11위의 성적으로 마치며 팀을 수습했다. 2016-17시즌에는 전반기에 라스 팔마스가 우승권 성적으로 치고 올라오며 돌풍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17년 여름 레알 베티스 지휘봉을 잡았는데, 라리가 6위의 성적으로 유로파리그 진출 티켓을 얻었다.

"상대가 공을 갖고 있다면 훔쳐야 하고, 우리가 가진 공을 절대 상대에게 선물해선 안된다."

라스 팔마스와 레알 베티스에서 모두 두 시즌만 치르고 물러났지만, 지도력이 아닌 구단과 관계 등 실력 외적 이유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세티엔은 이미 지난해부터 FC 바르셀로나의 후임 감독 리스트에 올랐다. 2018년에 크루이피스타 감독상을 받은 세티엔 감독은 바르셀로나를 이끌기 적합한 철학을 가진 지도자로 꼽혀왔다. 세티엔은 "요한 크루이프가 내 축구적 이상의 거울"이라고 말해왔다.

스페인 국가 대표 미드필더를 지낸 바 있는 세티엔은 라싱 산탄데르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 말하듯, 이 포지션에서 선수 생활을 한 이들은 경기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 지도자로 전업이 용이하다. 세티엔은 은퇴 후 자신이 현역 생활을 시작한 라싱의 감독으로 시작했고, 2009년 하부리그를 전전하던 루고를 맡아 2부리그 팀으로 끌어올리며 지도자로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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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선 안 된다. 자신감이 부족하며 공을 길게 차내고 경기를 하게 된다."

당시 세티엔이 루고의 돌풍을 일으킨 방식이 공 소유를 중심으로 높은 전방 압박과 주도적 축구였기에 '2부리그의 바르셀로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라스 팔마스 부임 전 세티엔 감독의 방법론은 이미 스페인 축구계에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라스 팔마스에서 4-3-3 포메이션, 레알 베티스에서 3-5-2 포메이션을 주로 쓴 세티엔 감독의 경기 접근법은 대체로 비슷하다. 라스 팔마스에서는 로케 메사를, 베티스에서는 윌리앙 카르발류를 피보테로 세우고 경기 템포를 조율하고 중원 지역을 장악했다. 라스 팔마스에서는 조나탄 비에라가 2선에서 킬러 패스를 찔렀고, 베티스에선 조반니 로셀소를 최대치로 활용했다.

세티엔이 이끄는 팀은 기본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빌드업 미드필더 등 공을 잘 다루는 세 명의 미드필더를 두고 두 명의 스트라이커와 한 명의 2선 공격수를 중앙에 배치한다. 좌우 풀백 혹은 윙백에게 측면 공격을 맡기고, 라인을 높여 상대 지역을 장악하는 축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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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형 미드필더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상대 균형을 깨트려야 하며, 득점력과 마지막 패스 능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더불어 상대 팀의 빌드업을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센터백과 골키퍼 모두 빌드업의 기점으로 기능해 공을 잘 다뤄야 한다. 베티스에서는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한 마르크 바르트라를 중용했다. 베티스에서는 주니오르 피르포가 윙어에 가깝게 공격하면서 스리백을 통해 수비 안정감을 더했다. 라스 팔마스 시절부터 세티엔의 팀이 문전 위험 지역에서 수비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베티스에서는 스리백 수비로 약점을 보완했다.

세티엔이 2018년 11월 바르사 원정 승리를 거둔 힘은 철저한 대인 방어를 통한 상대 지역 전면 압박이었다.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고, 강한 집중력과 전술적 규율을 요구했다. 골키퍼와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를 거치는 패스 라인을 집요하게 따라 붙었고, 가짜 9번 역할처럼 뒤로 빠지는 메시를 향해 바르트라가 후방 자리를 비우고 쫓아가 대인 방어 원칙을 유지했다.

공격 전개에는 융통성이 있다. 패스 플레이를 공격의 원칙으로 삼지만 장신 공격수를 활용한 직선적 패스와 세컨드 볼 경합 우위를 통해 효율적인 역습 패턴을 만들기도 한다. 라스 팔마스에서는 리바야, 베티스에서는 로렌 모론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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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얼마냐 뛰는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세티엔의 축구는 현대 축구 전술이 그렇듯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지만, 무엇보다 지적인 판단, 팀으로 조화를 추구한다. 공을 소유한 채 휴식하고, 이를 통해 상대 공격을 저지하는 소유 기반의 축구로, 빠르게 공을 탈취하고, 경기 주도권을 잡고, 팀 플레이로 득점하는 축구를 지향한다. 바로 FC 바르셀로나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철학이다.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 감독과 티토 빌라노바 감독이 떠난 이후 티키티카 시대의 위기와 맞물려 효율적인 축구를 가미해왔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MSN 트리오를 기반으로 역습 능력을 높였고, 발베르데 감독은 4-2-2-2 포메이션을 도입하며 균형을 강조했다.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바르셀로나의 철학적 색깔을 옅어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세티엔은 철학과 결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선택이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등 바르셀로나의 제안을 받았으나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름보다 바르셀로나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게 될 차비 에르난데스의 시대에 앞서 바르셀로나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적임자가 세티엔이다.

세티엔은 감독 경력을 시작한 이후 어느 때보다 좋은 선수들로 자신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세티엔 감독 체제에서 '크루이프의 현신'으로 불리는 프렝키 더용의 잠재력이 얼마나 극대화될 수 있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아르투로 비달, 이반 라키티치 등 투쟁적인 중앙 미드필더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세티엔은 마법의 열쇠와 같은 리오넬 메시를 기용할 수 있다. 세티엔은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기대했던 축구를 볼 수 있는 선택이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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