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익산박물관 개관]
왕궁리 유적·제석사지·쌍릉… 익산 출토유물 한자리에 집결
103년만에 공개 '대왕릉 목관' 등 처음 선보이는 희귀 유물 많아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금동제 사리외호. 높이 13㎝. 뚜껑과 목, 바닥엔 연꽃잎, 몸체엔 인동넝쿨무늬를 빼곡하게 새겨 백제 세공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국립익산박물관 |
1400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관(棺)이 망자의 위상을 드러낸다. 자재는 일본에서 수입한 최고급 금송(金松). 뚜껑과 좌우 판 위에선 알알이 박힌 금속 장식이 번쩍인다. 국경을 넘은 로맨스 설화의 주인공이자 발굴할 때마다 반전 스토리를 양산하는 수수께끼 왕. 백제 제30대 왕 무왕(재위 600~641)의 것으로 추정되는 쌍릉 대왕릉 목관이 1917년 발굴된 지 103년 만에 공개됐다.
◇익산 백제 시대 개막
전북 익산 미륵사지 남서쪽에 국립익산박물관이 10일 문을 열었다. 삼국시대 최대 절터인 미륵사지 출토 유물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약 3만 점을 보관·전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13번째 지방 박물관이자 공주·부여에 이은 세 번째 백제 박물관이다. "새로 생긴 건물이 대체 어디 있냐"고 주민들이 물어올 정도로 밖에선 얼핏 눈에 띄지 않는다. 사적 제150호인 미륵사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땅을 파서 지하 2층·지상 1층(연면적 7500㎡, 전시실 면적 2100㎡)으로 건립했기 때문이다.
백제 역사를 말할 때 흔히 한성시대(기원전 18~기원후 475), 웅진시대(475~538), 사비시대(538~660)로 구분하지만 '익산 백제'도 부각해야 한다고 학계에선 말한다. 백제 마지막 왕궁으로 추정되는 왕궁리 유적이 있고, 서동왕자(무왕)와 선화공주의 설화가 얽힌 미륵사지, 왕실 사원인 제석사지, 백제 최대 규모 돌방무덤인 쌍릉이 모두 익산에 있다.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은·청동·유리제 유물 9947점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를 전시할 국립박물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발굴된 지 103년 만에 공개된 쌍릉 대왕릉 목관. /국립익산박물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3개 전시실로 구성된 상설 전시만 해도 볼거리가 많다. 주인공을 놓고 반전을 거듭했던 쌍릉 대왕릉 목관이 가장 눈길을 끈다. 애초 쌍릉은 '고려사' 등 문헌을 통해 '대왕릉=무왕, 소왕릉=무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돼오다 2016년 대왕릉 목관 내부에서 수습한 치아 4점 분석 결과 20~40대 여성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학계가 혼란에 빠졌다. 결국 2017년 재발굴을 시작해 102점의 뼛조각이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분석한 인골 주인은 50~60대 남성. 대왕릉 주인이 다시 무왕으로 힘이 실리면서 논란은 일단 잠재운 상태다.
‘사리장엄’ 특별전에 나온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왼쪽)과 경주 감은사지 동탑 사리함./허윤희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영범 학예연구사는 "일본산 금송은 최고급 목관 재료로 공주 무령왕릉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 목관에도 쓰였다"며 "침엽수 중에서도 단단하며 수분에 강해 잘 썩지 않는다"고 했다.
◇미륵사지 유리 사리병도 처음 공개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백제 최고(最古)의 유리 사리병도 처음 공개됐다. 높이 3㎝. 발견 당시 뚜껑과 입구를 제외하고 파손된 채 나왔으나 형태를 추정해 복원했다. 송현경 학예연구사는 "유리 단면 두께가 0.05㎜로 종잇장처럼 얇아 훅 불면 날아갈 정도"라며 "워낙 약해서 이달 말까지만 공개하고 이후엔 재현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국립익산박물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사리를 담은 용기) 공양품을 감싼 보자기로 추정되는 비단과 금실, 제석사지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승려상 머리도 처음 공개됐다. 국립전주박물관이 보관해온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와 익산 입점리 고분군 금동관모도 고향에 돌아왔다.
박물관은 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사리장엄-탑 속 또 하나의 세계'를 마련했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장엄,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 등 국내 대표 사리장엄 15구를 볼 수 있다. 신상효 국립익산박물관장은 "미륵사지 남서쪽에 터를 잡은 유적 밀착형 박물관이자 익산 시대의 백제를 집중해 보여주는 문화 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산=허윤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