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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남자가 레이디 티를 써선 이길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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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별세한 스턴 NBA 커미셔너

선수를 함께 발전할 파트너 대우

완은 LPGA 투어 세계화 주도

KPGA는 패러다임 변화 필요

한동안 한국 남자 프로골프 선수들은 프로암 대회 파 4홀에서 웨지로 티샷하기도 했다.

“여자는 프로암에서 아마추어 참가자와 같은 티박스를 쓰는데, 남자는 백티를 써 동반자와 스킨십 기회가 없다. 그래서 대회가 줄어든다”는 지적이 있을 때다.

한국 프로골프협회(KPGA)는 동반자와 같은 티박스를 쓰게 했다. 여성 참가자를 만나면 레이디 티를 이용하는 게 원칙이었다. 대회 준비하는 선수는 프로암에서도 두 번째 샷은 실전에서 쓸 거리를 남겨둬야 한다. 그래서 웨지로 티샷하는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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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턴 전 NBA 커미셔너


프로 스포츠 사상 가장 뛰어난 리더로 불린 데이비드 스턴 미국 프로농구(NBA) 전 커미셔너가 최근 타계했다. 팬과 선수, 미디어는 1984년부터 30년간 NBA를 이끌었던 그를 기렸다. 뉴욕타임스는 “겨우 적자를 면하던 NBA는 스턴으로 인해 수백억 달러의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미디어는 스턴의 성공이 “게임의 핵심을 유지하면서 선수를 대하는 패러다임을 바꾼 데서 왔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부터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는 리그와 선수, 팀과 선수의 갈등이 많았다. 힘이 세진 선수들을 구단주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선수 파업 등으로 손해가 막심했다. 스턴은 높아진 선수 위상을 끌어안음으로써 더 성장했다. 팀보다 스타 선수 한 명의 위상이 더 커졌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의 위상은 농구라는 스포츠 자체보다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BA는 이를 장려했다.

무작정 다해준 건 아니다. 당시 NBA 선수의 이미지는 배부른 마약 중독자였다. 팬으로선 돈을 내고 약쟁이의 경기를 볼 이유가 없었다. 스턴은 도핑 검사를 의무화했다. 경기하지 않을 때는 정장을 입혔다. 선수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사랑받는 수퍼스타가 나올 수 있었다. PGA 투어도 이를 원용해 ‘이 사람들은 멋지다(These guys are good)’ 캠페인을 진행했고,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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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완 LPGA 커미셔너


골프 커미셔너 중 가장 뛰어난 리더로는 LPGA 투어의 마이크 완을 꼽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침몰하던 LPGA는 완의 취임 이후 살아났다. 올해 LPGA 총상금은 7510만 달러로, 취임 때보다 80% 성장했다. 기자는 LPGA가 살아난 이유가 ‘정체성 변경’이라고 생각한다. 완은 ‘미국’ 투어였던 LPGA를 ‘세계’ 투어로 바꿨다. LPGA 투어는 한국 선수가 딜레마였다. 이들이 잘할수록 미국에서 LPGA 인기는 떨어졌다. “아시아 선수가 투어를 죽인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투어는 영어시험으로 한국 선수를 쫓아내려고 했다. 영어가 골프의 본질은 아니다. 골프공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완은 LPGA 정체성을 ‘세계’ 투어로 바꿔 딜레마를 풀었다. 한국 기업이 대회 스폰서를 맡았고, 한국 방송사가 중계권을 샀다. 일본·중국·대만·태국에서도 스타가 나왔고, LPGA의 주요 축이 됐다. 물론 미국의 비중이 줄어 반발도 있었다. 완은 아시아 기업이 미국에서 대회를 열게 했다. 미국 선수도 더는 불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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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KPGA 회장


KPGA는 제18대 구자철 회장과 함께 새롭게 출발했다. KPGA의 이전 회장들이나 선수들이 일을 대충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레이디 티에서 티샷하는 눈물겨운 노력도 했다. 그러나 남자 선수의 자랑인 호쾌한 장타를 포기한 노력이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경기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KPGA의 위상을 반전시킬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일단 투어와 협회의 분리가 필수라고 본다. 투어 선수와 레슨을 하는 회원은 이해가 다르다. 미국은 52년 전 두 조직을 분리했다. 길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가면 싸운다. KPGA는 오랫동안 내분이 있었다. 스턴의 길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판을 바꿨기 때문에 마지막에 큰 박수를 받았다. 훗날 “구자철 회장이 위기의 한국 남자 프로골프를 살렸다”는 평가가 나오기를 바란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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