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대중이 열렬히 반응한 건 ‘극한직업’ ‘열혈사제’ 등 코미디 장르였다. 이하늬는 거침없이 망가졌고 그럴수록 대중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몸을 던지는 이하늬의 연기는 마치 편견을 깨기 위한 분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코미디․드라마․범죄․액션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대중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고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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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는 자신이 조사하던 피의자의 자살로 곤경에 처한 양민혁(조진웅 분) 검사가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 금융 비리와 마주하는 이야기다. 극 중 이하늬는 냉철한 이성을 가진 슈퍼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 역을 맡았다. 확고한 소신을 지켜왔지만,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며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극한직업’, ‘열혈사제’ 등 올해는 코미디 연기로 (대중과) 많이 만났어요. ‘블랙머니’ 김나리는 다른 얼굴이었고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캐릭터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단순하지 않고 에너지로 얘기할 게 많더라고요. 대사에서 담지 못하는 에너지를 연기로 표현하는 건 어떨까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김나리에 관해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의 고민이 ‘악녀’ 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졌죠.”
태어날 때부터 엘리트. 국내 최대 로펌의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이자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인 김나리는 많은 서사를 함축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캐릭터다. 이하늬 역시 이를 인지하고 짧은 장면이나마 그의 서사가 드러날 수 있도록 디테일을 심어두었다.
“김나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엘리트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첫 등장부터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는데 ‘미국에서 오래 유학했다’는 설정을 표현하려 기존에 제가 가진 영어 악센트를 전부 지우고 (대사를) 익히려고 했죠.”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하늬는 김나리의 엘리트적인 면모를 비주얼로 표현하기 위해 의상․헤어 등에 관해 아이디어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김나리는 옷을 입을 때도 멋을 내려는 사람은 아닐 것 같았어요. 다만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길 바라서 딱 떨어지는 슈트에 심플한 벨트 등으로 분위기를 냈죠. 감사하게도 의상팀에서 제 의견을 반영해주셨고 캐릭터가 멋지게 나올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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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는 실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금융사기를 모티브로 한다. 정지영 감독이 직접 언급한 바는 없으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과 많은 부분이 닿아있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이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저의 무지함에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죠. 저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정치․경제 등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무관심병’이라고도 부르잖아요? 하지만 당할 땐 당하더라도 알고 당해야 대처할 힘도 생긴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런 일을 알아야 하고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해요.”
무지함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그의 태도는 배우로서의 사명감, 책임감으로도 이어졌다.
“배우로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아는 사람으로서…말하지 않는 건 ‘유죄’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블랙머니’는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고 싶었고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모든 작업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그랬죠. 다른 사람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하늬의 작품․캐릭터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오랜 시간 작품․캐릭터에 골몰하고 안 되는 건 몇 번이든 도전해 해내고야 마는 완벽주의자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뮤지컬을 하고 난 뒤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배우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는데 (연기적으로) 부족함을 느꼈죠. 배우를 계속할 거라면 훈련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가야금 전문가 과정까지 수료한 상태에서 생각해보면 무대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 연습하고 수련해야 하는데…연기는 너무 준비 없이 도전했구나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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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는 연기 ‘수련’을 위해 미국 뉴욕의 HBO 스튜디오를 찾았다. 미국 전문 배우들도 원점에서 연기를 다시 배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몸의 코어를 연결하는 알렉산더 테크닉부터 보이스 트레이닝, 즉흥연기, 춤, 노래 등등. 이하늬는 약 1년 반가량의 ‘수련’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밥 먹듯 무대를 올라갔었는데 연기를 하려니까 다르더라고요. 중간에 그만두는 건 너무 찝찝하고! 시작했으니 끝까지 밀고 가야지…그런 마음으로 덤빈 것 같아요.”
이하늬의 수련은 이제야 빛을 보는 듯했다. 다양한 장르․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꾀하더니 이번에는 활동 무대를 옮겨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그의 차기작은 김지운 감독의 한국·프랑스 공동 제작 드라마 ‘클라우스 47’(가제)이다. 또 최근에는 아티스트 인터내셔널그룹(AIG), 윌리암모리스엔데버(WME)와 매니지먼트 및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해 할리우드 진출도 준비 중이다.
“‘클라우스47’은 에너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작업이라 해보고 싶었어요. 촬영은 12월 예정이었는데 2~3개월 더 미뤄졌죠. 그 외 시나리오도 보고 있는 게 있긴 해요. 다만 먼저 약속된 걸 기준으로 해야 하니까 아직 정한 건 없죠. 할리우드 진출 역시 에이전시와 매니저만 정해진 상태에요. 근데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어요. 물론 한국에도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힘이 있을 때 다양한 캐릭터를 여러 현장에서 해보고 싶어요.”
최송희 기자 alfie312@ajunews.com
최송희 alfie312@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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