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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와칭] 나만 불행한 것 같다구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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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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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무비의 영화서랍]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난 내 친구들을 참 많이도 질투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나보다 성적이 좋거나 사교성이 좋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때는 질풍노도의 시기. 난 자연스럽게 피어난 순수하고 건강한 감정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정을 동력으로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성장의 거름이 됐던 질투가 ‘시기’에 가까운 의미로 소모된 때는 성인이 돼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학창시절에는 질투란 감정 곁에 자신감과 자존감을 함께 두고 있었기에, 친구들의 부러운 지점들을 곧잘 따라잡을 수 있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란 말이 진리였던 시기랄까.

그런데 성인이 되고 각자가 다른 길로 나아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학교 안에서는 엇비슷해 보였던 친구들이 점차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 아무리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중무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격차’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뭘 해도 될 놈은 된다’ 따위의 어른들 넋두리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그런 상대적 박탈감, 열등감에 관한 영화다. 살면서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나를 비교했던 경험이 있다면, 주인공 브래드의 모습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에게서 과거의 나를 발견했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문득 자신의 삶이 초라하고 볼품없다고 느껴진다면

지인들의 SNS를 둘러보다 한 번쯤 우울감을 느꼈다면

이런 사람에겐 비추천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여유롭고 차분한 정서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 잘 나가, 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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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잠이 안 온다.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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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트로이와의 캠퍼스 투어를 하루 앞둔 밤. 브래드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날 오후에 있었던 부하직원 크리스의 퇴사 선언 때문. 브래드가 청춘의 이상과 소신을 담아 시작한 비영리 단체 사업. 그는 남들이 경제적 풍요로움을 좇을 때 사회적 소명의식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는데, 하나뿐이었던 직원 크리스가 퇴사하며 던진 말이 그의 가슴을 친 거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우울해져요.”

크리스가 남긴 말들을 곱씹으며 지난 인생을 돌아보던 브래드는 잘 나가는 대학 동창들의 SNS를 둘러보다 급 열폭감을 느낀다. 다들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본인만 빈곤하고 불행한 것 같은 기분. 브래드는 끝내 그 열폭감을 해소하지 못한 채 아들과 캠퍼스 투어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우월감과 좌절감을 오가는 감정의 시소를 탄다. 투어 내내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브래드. 그에게 아들이 던진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불혹? 질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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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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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주인공 브래드의 의식과 감정을 따라가는 심리드라마이자, 40대 중년 사내의 성장드라마로 매우 솔직하고 유쾌한 연출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중에서 브래드는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앞두고 있는 47세의 어른. 살아온 햇수만으로도 자연히 체득한 인생의 노하우가 거의 만렙일 것 같은데, 그는 첫 장면부터 침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찌질미’를 발산한다. 이때 그의 솔직한 속마음이 내레이션으로 새어나오는데,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팍팍 꽂힌다. “비교할 때면 실패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기분이 심해진다.”

이처럼 영화는 오롯이 브래드에게 집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심리가 때와 장소, 만나는 사람 등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를 위해 감독은 누구나 현실에서 한 번쯤 겪어봤음 직한 보편적인 상황들을 설정해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특히나 브래드가 SNS로 잘 나가는 친구들의 근황을 살피며 열등감과 우울감에 젖어드는 장면, 아들의 대학 면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부탁하는 장면 등은 개인의 유사 경험과 감정을 소환할 정도로 높은 공감도를 자랑한다.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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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진 아빠를 걱정하는 성숙한 아들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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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도 높은 에피소드가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생활연기의 달인 벤 스틸러의 호연 덕분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위아영> 등의 작품에서 솔직하고 위트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이 작품에서 역시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47세 브래드의 질투가 나름 귀엽게 포장될 수 있었던 건, 배우로서 그가 가진 매력이 함께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브래드란 인물의 내면을 여행하며, 우리의 마음까지 함께 챙겨볼 수 있는 힐링 영화다. 혹시 지금 브래드처럼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부디 이 영화를 통해 잠시라도 구원(?)받기를 바란다.

글 by 리드무비. 유튜브 영화 채널 리드무비 운영. 과거 영화기자로 활동했으며 영화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목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Brad‘s Status, 2017)

감독 마이크 화이트

출연 벤 스틸러, 오스틴 에이브람스

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IMDb 6.5 에디터 꿀잼


유튜브 '리드무비' 리뷰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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