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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한국인의 밥상', 어울림 술상-내림 술상-석정의 술상 등 '계절이 차린 주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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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데일리뉴스=황규준 기자] 우리 전통주는 가문의 얼굴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때 집집마다 술을 담갔고 가문의 격에 맞춰 안주를 차렸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이 술 빚기 좋은 이유가 저온에서 좋은 숙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수 천 년 역사 속에서 술과 함께 해온 우리 조상은 술과 함께 음식을 차려낸 상을 주안상(酒案床)이라 명명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술에 곁들여 먹는 음식에 대해 각별했기에 안주는 각 지방, 집안의 특색을 살리되 술과의 어울림을 고려해 마련한다.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다양한 술 그리고 각 술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안주를 차려낸다. 더불어 맛깔난 주안상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람 이야기도 함께 소개된다.

♦ 한강 어부를 만나 안주 명인이 되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서 틈만 나면 남편의 술상을 차리는 아내가 있다. 과거 미사리에서 어부 생활을 했던 학철씨는 잡아온 물고기를 들고 아내에게 갔다. 그러면 아내 정임씨는 남편을 위해 매운탕을 끓였다. 종갓집에서 태어난 정임씨는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배워 손맛을 익혔고, 그렇게 쌓인 그녀의 음식 솜씨 때문에 자꾸 집으로 술손님이 찾아왔다. 요새는 그 어머니에 그 딸. 요리하는 것이 좋다는 딸 명희씨도 손맛을 보탠다. 안주 명인이 된 정임씨와 요리를 연구하는 딸 명희씨가 학철씨가 부른 술손님을 위해 '한강 어부의 술상'을 차린다고 한다.

한강에서 생선을 잡았던 학철씨에게 메기매운탕은 술상에 빠지지 않는 안주. 쌀뜨물로 메기를 한번 끓여내는 것이 생선 비린내를 잡는 정임씨의 비법. 옛날에는 잔치가 있으면 돼지를 잡는 일이 흔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생기는 돼지 부속물 역시 최고의 안주. 청양고추를 넣고 빨갛게 무쳐낸 돼지내장볶음은 절로 술 생각이 난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음식 만드는 일을 즐기고 또 공부까지 하는 딸 명희씨의 안주는 돼지껍질묵. 돼지 껍질에서 나오는 젤라틴 성분이 만든 탱글탱글함은 묵의 식감을 한껏 살린다. 남편 학철씨의 자랑이 된 아내 정임씨가 차려낸, 술을 부르는 안주들을 맛보러 가보자.

스타데일리뉴스

'한국인의 밥상' 제공


♦ 천년을 이어온 술, 소곡주와의 '어울림 술상'.

예전에는 한산현이었던 서천군 한산면은 문화적인 풍성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소곡주. 누룩을 적게 넣고 빚었다 하여 붙여진 소곡주(小麴酒)는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깊고 묵직한 단맛을 낸다. 한산면에서 빚어지는 소곡주는 건지산에서 발원한 천연수를 사용한다. 단맛에 현혹돼 연거푸 마시다보면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깊고 묵직한 단맛을 자랑하는 소곡주에 어울리는 안주는 과연 무엇일까?

이곳 서천은 바다와 가까워 해산물로 안주를 만들어 소곡주와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제철인 갑오징어와 동죽에 쌉싸래한 도라지를 초고추장에 무치면 짭짤한 맛과 단맛의 소곡주이 합쳐져 단짠의 조화를 이룬다. 소곡주와 함께 한산의 명물인 모시로 만든 모시전 역시 맛깔난 안주가 된다. 한편, 술지게미에 물과 설탕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술지게미죽은, 아이들이 많이 먹고 갈지(之) 자로 걸어 다녔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음식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소곡주와 제철 산물로 요리한 안주가 함께하는 어울림의 술상을 맛보자.

♦ 대를 이어 예술을 빚는 계송씨 가족의 '내림 술상'.

비옥한 땅과 맑은 물로 예부터 산물이 풍부했던 평택. 그곳에는 대를 이어 술을 빚는 가족이 살고 있다. 땅 밑에 흐르는 물이 좋아 술을 빚기 시작했다는 계송씨 직업은 화가. 계송씨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예술가이다. 도예가 아내와 디자이너 큰딸, 사진작가 막내딸까지. 이들은 막걸리에 일반적인 재료인 고두밥을 넣지 않고, 생쌀을 갈아 만든다. 이들 가족은 술 못지않게 안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도예가 인자씨는 그래서 요리연구가도 겸하고 있다. 예술가 가족이 표현한 술상 위, 술과 안주의 어울림을 구경하자.

인자씨가 만드는 안주는 대부분 시집 와서 보고 배운 내림 음식이다. 그 중 계송씨가 좋아하는 안주는 조선간장에 무친 육회. 또 예전에는 흔했지만 이제는 보기 어려운 준치로 만든 준치 김치는 서해를 끼고 살아온 집안의 내림 음식. 준치는 뼈가 많아 생으로 먹기 힘들지만, 발효된 준치김치는 뼈가 씹히지 않고 톡 쏘는 맛이 중독을 부른다. 매콤하게 조린 민물새우무조림까지. 스트레스를 해소해 건강하게 만드는 약을 빚는다는 생각으로 술을 만드는 계송씨 가족의 '내림 술상'을 맛보러 가자.

♦ 시인의 옛집에서 기억으로 차린 '석정의 술상'.

전주에는 근대 미래 유산으로 지정된 고택 '비사벌초사'가 있다. 고택의 원주인은 시인 신석정 선생. 전원적인 시를 주로 썼던 목가시인이었던 그는 고택 중앙에 정원을 만들어 손수 꾸미는 정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정원만큼이나 술을 사랑했다. 그래서 신석정 시인에게 정원은 시에 대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소중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술상이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인연이 되어 '비사벌초사'에 들어온 명주씨 부부는 시인의 정신을 이어 고택을 가꾸며 산다. 고택지킴이가 된 이들 부부가 신석정 시인의 둘째딸 난이씨와 함께 시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시 시인이 즐겼던 주안상을 재현하고자 나섰다.

바다가 가까이에 있는 부안에서 태어난 신석정 시인은 줄곧 해산물을 즐겨 먹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하란(대하알). 그래서 하란을 넣은 달걀찜을 술안주로 즐겼다. 요즘은 하란이 구하기 어려워 오늘 술상에는 숭어알을 넣은 달걀찜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향이 센 나물을 좋아했던 시인을 위해 전주 10미 중 하나인 미나리로 전을 만들었다. 여기에 고택지킴이 남용씨 집안의 특별한 음식인 멜라초돼지고기짜글이도 안주로 올린다. 삶은 백합과 생 고수, 간장도 술상에 올려놓는다. 신석정 시인으로 연결된 이들이 그의 옛집에서 나누는 '석정의 술상'을 함께 즐기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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