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단처럼 유랑, 남자 못 만나
여자 골퍼와 남자 캐디 커플 많아
원팀일 때 컷 탈락하면 수입 줄고
캐디에 화풀이 잦아 사이 나빠져
지난해부터 넬리 코다(가운데)의 캐디백을 멘 제이슨 맥디디(왼쪽). 3일 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에서도 맥디디는 약혼자 카롤린 마손과 우승 경쟁을 벌인 코다의 캐디였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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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주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쇼를 하는 유랑 서커스단과 비슷하다. 방랑자 같은 생활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만난다고 해도 진지하게 교제하기 힘들다.”
재미교포 크리스티나 김의 9년 전 책 『김초롱의 스윙』에 나오는 내용이다. 골프 투어 선수는 배우자를 찾기 쉽지 않다. 크리스티나 김은 책에 “PGA 투어 선수는 대회장에서 적당한 여성을 찾을 수 있지만, LPGA 투어 대회에 오는 남자들은 은퇴자이거나 딸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 정도”라며 “캐디는, 그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인이 된다. 최소한 선수 예닐곱 명이 캐디와 결혼했다”고 적었다. 크리스티나 김도 캐디와 사귄 적이 있다.
LPGA 투어에는 선수-캐디 부부를 포함해 다양한 커플이 있다. 그래도 남편 혹은 남자친구를 자신의 캐디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재미교포 제인 박은 아리야 주타누간 등의 캐디를 한 피트 곳프리와 결혼했다. 지난해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약혼자와 함께 우승한 페르닐라 린드베리는 결혼하면서 캐디를 바꿨다. 남편은 다른 선수 가방을 멘다. 커플이 한 팀이 아니라면, 상대 팀으로 만날 수 있다. 내 남자가 돕는 선수와 경쟁할 때가 있다. 3일 대만에서 벌어진 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에서 그랬다.
카롤린 마손과 넬리 코다가 우승 경쟁을 했는데 코다의 캐디가 마손의 약혼자다. 마손은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다. 약혼자는 넬리의 캐디이기 때문에 넬리를 (많이) 응원하고, 나를 조금은 응원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도 얄궂다. 왜 커플이 코스에서 짝을 이루지 않을까.
골프는 스트레스가 많은 종목이다. 캐디가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저 변화를 위해 캐디를 바꿀 때도 있다. LPGA 투어는 특히 캐디 교체가 많다. 크리스티 커는 “여자 선수들은 호르몬 때문에 감정적이 되기 쉽다. 캐디에게 감정을 쏟아부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가정파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린드베리는 “연인이 선수와 캐디로 있는 건 쉽지 않다. 서로에게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의 운명을 한 팀에게 거는 것도 위험하다. 남편을 캐디로 쓰는 LPGA 투어 선수 사라 제인 스미스는 “컷 탈락이면 두 사람 모두 수입이 없어지는 게 문제”라고 했다. 프로 골퍼가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우승 선수가 부각돼 그렇게 보일 뿐이다. 기업 스폰서가 활성화된 한국 선수들은 사정이 낫다. 서양 선수들은 거의 후원사 없이 투어에 참가한다. 여행 비용이 많이 들어, LPGA 투어는 상금 랭킹 40위는 돼야 손익 분기점을 넘긴다고 한다. 선수는 열심히 공을 치고, 남편 혹은 남자 친구는 돈 잘 버는 선수와 일하면서 따로 벌어야 한다.
지난주 대만 대회는 코다의 우승으로 끝났다. 연장 접전에서 이긴 코다와 그의 캐디는 감격의 포옹을 했다. TV 화면을 통해서 보니 캐디는 아쉽게 역전패한 약혼자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을 이긴 경쟁자와 포옹하는 약혼자를 지켜보던 마손의 마음은 어땠을까.
‘골프 투어는 유랑 서커스’라는 크리스티나 김의 책 구절을 보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고전 영화 ‘길’이 연상된다. 앤서니 퀸이 연기한, 유랑극단의 무뚝뚝한 차력사 참파노를 따라다니는 젤소미나, 그가 불던 애절한 트럼펫 선율.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서커스 공연이 끝났고, 둘 다 큰돈을 쥔 마손 커플은 신나게 파티를 했을지도.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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