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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악동들도 스포츠의 중요한 콘텐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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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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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바뀐 골프 규칙은 나쁜 행동을 한 선수에게 바로 벌타를 줄 수 있게 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회는 김비오 손가락 사건에서 그러지 않았다.

만약 김비오가 2벌타를 받았다면 우승자는 김대현이 됐을 터다. 군복무를 성실히 마치고 돌아온 ‘굳 가이’ 김대현이 갤러리에게 손가락 욕을 한 ‘배드 가이’를 이기고 고향에서 우승한다는 스토리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김비오로서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김비오는 나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을 받지 않고 우승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배워 그랬다. 잊어달라”는 발언으로 팬들을 더 화나게 했다. 현장에서 벌타를 받았다면, 그래서 우승을 내줬다면 대중의 화를 돋우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결과론이다. KPGA 경기위원회는 새 규정에 따라 벌타를 줘서 우승자가 바뀌는 상황이 매우 부담됐을 것이다.

존 댈리는 젊은 시절 화를 참지 못하고 우드로 갤러리 스탠드 쪽으로 공을 친 적이 있다. 앞 조가 너무 느리다고 앞 선수를 향해 공을 날린 적도 있다. 공에 맞았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 그러나 출장 정지 징계가 1년을 넘지는 않았다.

더스틴 존슨은 2014년 세 차례 마약 복용이 적발돼 출장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다고 미국 매체가 보도했다. 경기 중 화가 나서 클럽을 호수로 던져 버린 로리 매킬로이에겐 공개적인 징계는 없었다.

김비오 뉴스는 미국 골프계에서도 화제다. 손가락 욕 자체가 아니라, 손가락 욕으로 3년 징계를 받은 건 지나치다는 이유다. 트위터에는 “북한에서 열린 대회인가”, “전체주의 나라인가” 라고 비판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골프에서 김비오처럼 경기 중 손가락을 내민 경우는 또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국 선수다. 현재 미국 2부 투어에서 뛰는 이동환은 PGA 투어(1부) 신인이던 201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AT&T 내셔널에서 손가락으로 욕을 했고, 이장면은 카메라에 잡혔다.

이동환은 “갤러리가 아니라 홀에 손가락을 내민 것이다. 퍼트가 안 들어가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이동환은 공개적안 제재를 받지 않았다. 조용히 벌금만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마다 도덕률은 다르다. 유명인의 비행에 관해 한국은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다. 스포츠도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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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댈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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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감안해도 김비오의 3년 징계는 긴 듯하다. 제재의 실효성도 크지 않다. 김비오는 Q스쿨을 거쳐 일본 투어나 아시안 투어 등 다른 투어에 갈 수 있다. 그는 한국 투어에서 올 시즌 상금 1위, 거리 1위를 기록한 실력자다. 오히려 절치부심한 김비오가 다시 PGA 투어에 도전해 성공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김비오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김비오는 명백한 잘못을 했다. 벌을 받아야 한다. 팬들의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아 징계를 줄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참고할 만한 예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비오로 인해 이번 주 골프계 화제의 중심은 KPGA였다. 동시에 열린 KLPGA 투어에서 조아연, 최혜진, 김아림이라는 스타 선수들이 연장전을 벌이는 등 명승부가 펼쳐졌는데 김비오에 가려졌다. 사람들의 관심을 놓고 벌인 경쟁에서 KPGA가 오랜만에 KLPGA를 이겼다.

신사의 스포츠인 골프에서도 선수들이 모두 신사는 아니다. 존 댈리는 도박과 음주, 가정 폭력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홀컵에 침을 뱉기도 했으며 한 라운드에 그린을 몇 번이나 훼손시켰다.

대부분 팬들이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악동’들이 우승하면 화도 난다. 그러나 악동들도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스포츠의 중요한 콘텐트이기도 하다.

영화에도 굳 가이와 배드 가이가 함께 있어야 재미있다. 타이거 우즈는 뛰어난 성적도 냈지만, 세계를 놀라게 한 스캔들도 일으켰다. 그래서 그에게 더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말이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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