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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체육의 재정자립도와 체육개혁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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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무릇 조직 운영의 안정성은 탄탄한 물적 토대의 구축에 있다. 든든한 재정젖줄을 확보하지 못하면 조직이 목표하고 의도한 사업을 제대로 전개할 수 없고 중·장기적인 마스트플랜 역시 튼실하게 짤 수 없기 때문이다. 체육 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마당에 그동안 관심밖에 머물던 한국 체육의 재정자립도에 대한 중요성이 거론되는 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국 체육의 재정자립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재정의 90% 이상을 국고와 국민체육진흥기금에 의존해 왔다. 올해는 전체 예산 3106억원 가운데 국민체육진흥기금이 2938억원으로 전체 수입의 94.6%를 차지했다. 자체 수입은 168억원에 불과해 재정자립도는 달랑 5.4%에 그쳤다. 사실상 재정의 대부분을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대한체육회 구조적 특수성은 체육회 산하 회원종목 단체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65개 회원종목 단체의 재정자립도는 55.87%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 65개 회원종목단체 중 34개 단체는 50% 미만의 재정 자립도를 보였고, 가장 낮은 단체는 6%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 재정 자립도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체육 구조가 자립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채 정부 지원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로 불똥이 튄다. 체육의 재정자립도 미흡이 한국 체육의 어두운 그림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현격하게 뒤떨어지는 재정자립도는 체육을 지배하는 독특한 문화를 양산한 결정적 계기가 됐음은 물론 체육인들의 의식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돈이 개입되면 수평적 관계가 수직적 관계로 재편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정부와 체육계의 관계는 대등해야 하지만 정부 지원금이 가장 중요한 체육의 존립근거가 되면서 둘의 관계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지원금을 매개로 정부와 체육계는 수직적 위계질서의 관계로 편입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 결과 체육계는 체육의 자율성을 외치기보다는 정부 권력에 순응하는 게 낫다고 보고 스스로 알아서 기는 ‘을’의 입장으로 전락한다. 한국 체육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된 ‘관치체육’은 결과적으로 체육계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게 어찌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체육인들의 낮은 자존감은 따지고 보면 정부 지원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체육계가 유독 부정과 부패의 덫에 싶게 빠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원금을 금쪽같이 여기며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 정부의 돈을 ‘공돈’으로 여기는 나쁜 버릇이 결과적으로 부정 부패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체육계의 재정 자립도가 체육개혁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정자립도 향상은 체육계에 주어진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최순실의 체육농단이후 뜻있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체육계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업들을 체육계로 다시 유인하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국 체육의 미래는 그야말로 어둡다. 기업들이 신바람을 내며 체육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세재혜택을 마련하거나 마케팅에 약점이 있는 비인기종목들을 적극적으로 묶어내 공동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돈은 늘 그렇듯 양면성을 지닌다.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를 당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돈 문제다. 재정자립도의 문제가 작금의 체육계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로 떠오른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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