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골프 연습을 쉬면서 보낸 추석은 손에 꼽을 만큼 적더라.”
여자 골프 ‘세계 1위’ 고진영(24)이 기억하는 추석이다. 어린 시절부터 추석 명절에도 늘 그의 손에 골프채가 쥐어있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그러했듯 1년 365일 쳇바퀴 굴러가듯 연습에 몰입하면서 ‘특별한 날’이라는 개념없이 성장했다. 고진영은 최근 추석을 맞아 본지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어릴 때 추석을 떠올리면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송편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명절을 맞아 모처럼 가족이 모일 때면 연습은 하루정도 쉬어도 될 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이 모이기 전에 오히려 더 이른 시간 연습장에 데려갔다. 평소처럼 연습을 끝내야만 가족과 놀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외동딸인 고진영은 명절 때 친척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을 통해 운동으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어릴 때부터 쾌활하고 친화력이 좋았던 터라 사촌 동생들이 잘 따랐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고진영은 ‘명절 때마다 외동딸로 특별한 역할이 있었는가’라는 말에 “그 때부터 힘이 센 편이어서 사촌 동생들을 대신해 무거운 음식을 나르곤 했다”고 곱씹었다. 고진영이 추석을 여유롭게 보내게 된 건 프로가 된 뒤다. 특히 지난해 추석 명절이 국내 대회 일정과 맞물리면서 반려견 ‘대박이’를 데리고 모처럼 가족을 만났다. 올 초부터 세계 최정상 선수로 발돋움하는데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올해도 추석을 국내에서 보낸다. 10월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출전을 앞두고 최근 귀국한 그는 가족과 추석 연휴를 즐긴 뒤 국내에 머물면서 스윙 교정 및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개인 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고진영은 9일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7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전성기의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넘어 세계 골프는 ‘고진영 시대’다. 메이저 2승을 포함해 올시즌 4승을 기록 중인 고진영은 다승, 상금랭킹, 그린 적중률, 평균타수 등 전 부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단순히 수치로만 고진영 시대를 논하는 게 아니다. 올시즌 눈에 띄게 향상된 퍼트부터 승부처에서 흔들림 없는 아이언 샷, 강철 멘탈 등은 그의 전성기를 장기적으로 이끌 확실한 무기다. 탁월한 기본기와 강한 정신력을 지닌 고진영을 두고 여러 전문가들은 왕년의 케리 웹(호주), 소렌스탐 등 모범생 골퍼로 불린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진영은 전성기 비결에 대해 “그저 매 대회 후회없는 경기를 하려고 노력하니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끼기에 노력을 할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고진영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선수라고 표현하면서도 타이틀 등에 얽매이지 않는 ‘내려놓는 마음’을 최고의 선수가 된 원동력으로 꼽는다. 높은 경기 몰입도로 이어졌고 멘탈도 한층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시즌 초반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꿈에 그리던 메이저 첫 정상에 오른 뒤에도 그는 “타이틀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진영은 “늘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코스에서 특히 더 그러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누구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골퍼에게 꼭 필요한 웨이트 트레이닝 법’에 대해 그는 “난 스트레칭을 빼놓지 않고 저녁마다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근력 운동은 하루, 이틀만 하지 않아도 근육이 쉽게 빠진다. 시즌 중엔 오프시즌만큼 유지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데 꾸준히 하체 운동은 하려고 한다”고 했다. 또 ‘똑바로, 정확하게 칠 수 있는 기본기 팁’에 대해선 “스윙 패스가 올바르게 다녀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심축이 흔들리면 좌, 우로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만큼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원하는 결과를 지속해서 얻고 있기에 그간 느끼지 못한 골프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법했다. 고진영은 “올시즌 골프를 하는 과정에서 지난해보다 그리고 그 어느 해보다 다양한 샷을 구사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해하면서 치니까 경기 중에도 다양한 샷을 시도할 수 있게 되더라. 그런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KLPGA 삼다수 대회에 참가한 고진영. 세계랭킹 1위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갤러리들이 고진영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제공 | KLPGA |
한국 여자 골프는 ‘화수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년 좋은 자원이 국내와 LPGA 투어에 등장하고 있다. 그 때마다 한국 선수만의 혹독하고 많은 훈련량, 즉 스파르타식 훈련법이 주목받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더는 스파르타식 훈련법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여러 시스템을 경험한 고진영은 “이제 많은 훈련량이 잘하는 비결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연습한만큼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훈련량이 부족하면 그만큼 자신감도 떨어지기에 경기력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무작정 연습만 하는 게 아니라 효율성이 중요하다”면서 더욱 과학화한 훈련 접근을 통해 경쟁력을 쌓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무한경쟁에서 고진영은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다. 당장 올시즌 LPGA투어 남은 대회에서 2승 이상을 거두면 지난 2013년 박인비가 세운 역대 한국인 LPGA 한 시즌 최다승인 6승과 타이 기록을 세운다. 고진영은 올해의 선수 유력 후보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수상하면 1979년 낸시 로페스, 1980년 베스 대니얼(이상 미국) 1995년 소렌스탐, 2015년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투어 신인상을 수상한 이듬에 올해의 선수까지 품는 역대 5번째 선수가 된다. 더구나 내년엔 그가 열망하는 또 다른 대회인 2020 도쿄올림픽이 열린다. 누구보다 현재 페이스를 잘 끌고가 올림픽 시상대에도 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고진영은 “아직 올림픽을 대비한 별도의 훈련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저 지금처럼 매 대회 후회없이 임하자는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면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경기력을 보이겠다.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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