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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좋은 사람’ 가면 뒤 두 얼굴의 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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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14억 중 캐디엔 560만원 인색

위선 드러나면서 실망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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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쿠차.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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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퍼 매트 쿠차(41·미국·사진)는 항상 환하게 웃는다. 트위터에는 ‘굿 가이(good guy·좋은 사람) 매트 쿠차’라는 계정도 있다.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팬이 만들었다. 기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쿠차를 좋아했다.

그런 쿠차에게 올해 여러 사건이 터졌다. 먼저 ‘짠돌이’ 캐디피 사건이다. 쿠차는 지난해 말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에서 우승 상금 약 14억6000만원을 받았는데, 캐디에게 560만원만 줬다. 올해 문제가 됐다. “전담 캐디가 아니라서 관례인 10%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0.4%는 지나쳤다. ‘굿 가이’ 쿠차라서 더 놀랐다. 그는 문제가 되자 5만 달러를 줬다.

다음은 컨시드 사건이다. 지난 3월 월드골프챔피언십 매치플레이에서 상대인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짧은 버디 퍼트를 넣지 못한 후 실망해 툭 친 파 퍼트가 들어가지 않은 이후다. 쿠차는 경기위원을 불러 컨시드를 주고 싶다고 했다. 심판이 소급 불가라고 했다. 화가 난 가르시아는 다음 홀 그린에서 공을 풀스윙으로 때리는 동작을 취해 욕을 먹었다.

피치 마크 사건도 있다. 지난 5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쿠차가 친 공이 다른 선수가 낸 페어웨이 피치 마크에 들어갔다. 쿠차는 드롭을 요청했다. 피치 마크가 자신의 공이 두 번째 튕길 때 낸 피치 마크와 연결돼서 그렇다고 우겼다. 동반자 리키 파울러는 “쿠차가 속임수를 쓰려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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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주위 모래를 걷어내고 있는 쿠차. [JTBC 골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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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유러피언 오픈에서 또 쿠차 뉴스가 나왔다. 쿠차는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 공 주위 작은 모래를 치웠다. 아주 세심하고 깨끗이 치웠다. 결과적으로 마치 공이 티 위에 올라간 것 같았다. TV 해설자는 “삽을 줘야 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벙커나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 작은 돌멩이는 루스 임피디먼트로 치기 때문에 치워도 딱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쿠차가 치운 것은 사실 모래라고 봐야 한다. 모래와 작은 돌멩이를 구분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쿠차가 "모래가 아니라 돌멩이"라고 주장하면 처벌이 쉽지 않겠지만 매우 궁색하다. 신사의 스포츠에서 적절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할 선수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이 더 크다. 쭈그리고 앉아 작은 모래를 일일이 집어내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쿠차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유명했다.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극성 아버지도 한몫했다. 아버지는 마스터스, US오픈 등에서 아들의 캐디를 하며 갤러리에게 “저거 멋진 샷이에요, 아니에요? 멋있는 거죠?”라며 응원을 유도했다. 결과적으로 동반자의 경기를 방해했다. 타이거 우즈도 치를 떨었다. 쿠차는 프로가 된 후 환한 미소로 과거 이미지를 벗었다.

그러나 ‘굿 가이’ 이미지가 거짓은 아닌가 의심된다. 컨시드 사건이 결정적 계기다. 처음엔 화를 낸 가르시아 잘못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이상하다. 컨시드를 주고 싶다면 다음 홀에서라도 주면 된다. 결과적으로 컨시드를 주고 싶다면서 불가 상황을 설명해 가르시아 약만 올린 꼴이다. 불 같은 성격의 가르시아의 화를 돋군 건 아닌가. 취재해 보니 주위 선수들도 “쿠차가 가식적”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영국 스카이 스포츠에서 경기를 해설한 전 라이더컵 유럽 캡틴 폴 맥긴리는 “쿠차의 미소에 속으면 안 된다. 그가 가르시아와 컨시드 상황에서 왜 경기위원을 불렀을까.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골프 선수는 여타 단체 종목 선수와 달리 패스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희생을 해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성상 이기적일 수도, 인색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좋은 사람으로 여겼던 선수가 사실은 가면을 썼던 거라 생각하니 배신감이 든다. 위선이 화두인 시기여서 그런가,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며 감정을 드러낸 가르시아가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정정합니다.

첫 기사에서 "쿠차가 모래를 치우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퍼팅 그린위에서만 해당된다. 벙커나 웨이스트 에어리어에서는 모래를 치우면 안 된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작은 돌멩이는 치울 수 있다. 모래와 작은 돌멩이를 구분하는 정확한 규정은 없다. 쿠차는 모래로 보이는 것들을 작은 돌멩이라고 주장하고 치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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