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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장에서 설 땅 잃는 월요 예선의 토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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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대회 출전권 걸린 1라운드 경기

LPGA 준우승 예리미 노도 거쳐가

비시드선수에게는 그나마의 기회

상금 많은 KLPGA 도입 검토할 만

중앙일보

월요 예선을 통해 포틀랜드 클래식에 참가한 예리미 노는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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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요일 아침에 도착해 부랴부랴 연습하고 다음 날 월요예선을 치러서 떨어지면 대회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연습할 곳을 찾아다니면서 돈만 쓴다. 매주 이런 일을 치르니 골프 투어는 사람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미국 프로골퍼 프레드 커플스(60)는 PGA 투어 신인이던 1981년 이렇게 푸념했다. 그의 불만은 월요 예선(Monday qualifier)이었다. 당시 PGA 투어 시드 선수는 60명이었다. 시드 선수는 매주 출전권이 보장됐지만, 나머지 선수는 지난 경기 컷통과를 못하면 매주 월요일 별도의 예선 대회를 통과해야 했다.

월요 예선은 딱 한 라운드였지만, 참가 선수가 본 대회만큼 많았고 거의 매주 열렸다. 비(非) 시드 선수는 매주 피 말리는 경쟁을 뚫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커플스처럼 월요 예선을 치러야 하는 비시드 선수는 '토끼(rabbit)'라고 불렸다. 본 대회 전인 일요일에 일찌감치 도착해 월요일 하루짜리 대회를 치르고 총총히 떠난다는 뜻에서다.

골프 투어에도 기득권이 있다. 투어 기득권은 시드 선수 숫자와 우승자의 시드 면제 기간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PGA 투어에서 시드 선수가 60명일 때 이들 60명의 기득권은 확실히 보장됐다. 나머지는 계급장 떼고 월요 예선에서 경쟁해야 했다.

PGA 투어는 1982년 말 시드 선수를 125명으로 늘렸다. 이듬해 잔류할 선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 기득권자 수가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 투어가 커지고, 대회와 상금이 많아지면서 B급 선수들의 역할이 늘어났고 목소리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 대신 신규 선수 쿼터는 크게 줄었다.

PGA 투어는 시드 선수를 125명으로 확대한 이후 선수들에게 출전권 순번을 부여했다. 상위 순번 중 빠지는 이가 많아도 선수 수급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월요 예선은 소규모(4명 쿼터)로 유지했다. 월요 예선은 누구라도 실력만 있다면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상징이며 때론 팬들이 좋아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러피언 투어는 이듬해에도 투어에 잔류하는 시드권자가 110명, LPGA 투어는 90명이다. 시드권자 수는 투어의 대회 수 및 상금 규모 등과 얼추 비례한다.

한국 투어는 잔류 시드권자가 KPGA(남자) 70명, KLPGA(여자) 60명이다. 나머지 시드 선수들은 출전권 순번을 부여 받아 월요 예선을 치르지 않는다. A급 선수가 특별히 유리한 것은 아니다. 또한 잔류 선수 숫자가 적어, 신규 진입을 노리는 선수들에게 기회가 넓은 편이다. 기존 선수는 잔류 시드권자의 숫자를 늘리고 싶어 한다. KPGA와 KLPGA는 최근 10년 사이 각각 10명씩 시드권자 수를 늘렸다.

재미교포 예리미 노가 2일 LPGA 투어 캠비아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준우승했다. 우승했다면 LPGA 투어 역사상 세 번째로 월요 예선 출신 우승자가 될 뻔했다. 어린 나이(18세)보다 월요 예선 출신 선수여서 큰 화제가 됐다.

월요 예선 규모는 투어 상금과 비례한다. 요즘 PGA 투어의 월요예선을 통과하려면 6언더파 정도는 쳐야 한다. 참가하려는 선수가 워낙 많아 월요 예선 출전자를 뽑는 또 다른 예선(pre-qualifier)도 치른다. LPGA 투어는 월요 예선 참가자 수가 많지 않다. 예리미 노가 참가한 포틀랜드 클래식 월요 예선은 19명이 나와 2명이 출전권을 받았다.

한국은 월요 예선이 거의 없다. KLPGA는 전혀 없고 KPGA는 몇몇 대회만 치른다. 월요 예선은 장단점이 있다. 김용준 KPGA 경기위원은 “비용은 들고 상금은 거의 없는 월요 예선 시스템을 투어에서 정규화한다면 경제력이 부족한 선수의 기회가 닫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대회도 많고 상금도 큰 KLPGA는 시도해볼 만하다. 개천 속 붕어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뛰어난 인기 토끼를 얻을 기회도 된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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