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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인터넷으로 전통 시계업계가 흔들? 수백 년 세공 기술은 AI도 못 따라오죠"

조선일보 라쇼드퐁·발레드주·비엘=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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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인터넷으로 전통 시계업계가 흔들? 수백 년 세공 기술은 AI도 못 따라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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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월드' 떠난 스와치 그룹
브레게·블랑팡 등 6개 브랜드 제작 공정 등 비밀 전격 공개
"가짜 뉴스 넘쳐나는 시대에 우린 '팩트'로 승부합니다. 스와치 그룹 내 고급 시계 매뉴팩처(제작소)와 제작 공정, 복원실 등을 공개하는 건 그만큼 자신 있기 때문이죠."

자케 드로가 선보인 '매직 로터스 오토마통'. 버튼을 누르면 시계 자판을 장식한 잉어, 연잎 등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사계절의 변화와 인생의 순환을 은유했다. /자케 드로

자케 드로가 선보인 '매직 로터스 오토마통'. 버튼을 누르면 시계 자판을 장식한 잉어, 연잎 등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사계절의 변화와 인생의 순환을 은유했다. /자케 드로


세계 최대 시계 제조사인 스위스 스와치 그룹의 창업주 손자이자 브레게와 블랑팡 CEO를 맡은 마크 하이에크는 최근 스위스 일대에서 열린 '타임 투 무브' 행사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세계적인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를 지난해 탈퇴하기로 공식 결정하면서 우리가 가장 잘하는 걸 먼저 보여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시계업계는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애플 워치 등 스마트 워치의 인기가 가속화되면서 '제2의 쿼츠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쿼츠 대란은 1970년대 저렴한 일본발(發) 쿼츠(전자식) 시계 출시 이후 스위스 시계 업체들이 줄도산하면서 산업 전체가 통째로 뒤흔들렸던 걸 말한다. 중국 정부의 럭셔리 소비 규제도 시계 산업에 불리할 거란 예측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저가부터 초고가까지 19개 브랜드를 보유한 스와치 그룹은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블랑팡 매뉴팩처를 비롯해 해리 윈스턴, 자케 드로 등 6개의 고가 브랜드 제작 공정 등 '영업 비밀'을 전격 공개했다. 스마트 시계의 치솟는 인기 등 각종 악재에도 아날로그 방식이 주는 매력에 최첨단 기술력까지 더해진 신기술을 선보여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였다.

브레게의 시계 장인이 문자판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대형 화면으로도 현재의 세공 상태를 볼 수 있다. /최보윤 기자

브레게의 시계 장인이 문자판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대형 화면으로도 현재의 세공 상태를 볼 수 있다. /최보윤 기자


스와치가 가장 자부심 있게 공개한 건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로 유명한 브레게 매뉴팩처였다. 기계로는 마무리하기 어려운 세심한 복원 과정과 문자판(다이얼) 세공 과정을 선보였다. 0.1㎜ 단위 부품이 많아 루페(세공용 돋보기)는 물론 현미경도 동원된다. 문자판 장인들이 다루는 세공 기계는 각종 컴퓨터 제어 시스템 등이 들어가 사람 몸집만 한데도 바늘은 정작 머리카락처럼 가늘었다. 곡선과 직선을 넘나들며 균일하게 힘을 조정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문자판을 망치게 된다. 글자를 새기거나 문양을 내는 작업에선 숨 쉬는 것도 마음껏 할 수 없다고 했다. 세공 장인 중에서도 으뜸은 자개를 다룬다. 워낙 얇아 살짝만 건드려도 깨지기 십상이다.

예술 시계의 결정판은 라쇼드퐁에 있는 '자케 드로'에서 볼 수 있었다. 기계식 자동 인형을 뜻하는 '오토마통' 기술이 접목된 '매직 로터스 오토마통'은 회전목마 돌 듯 시계 내부에 조각된 사물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잉어, 잠자리, 연꽃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인생을 은유한 것이라 했다. 푸시버튼을 누르면 잉어는 꼬리를 살랑살랑 치며 자판 위를 위아래로 유영한다. 3㎜ 정도 크기 잉어 안에 수백개의 부품이 톱니처럼 맞물려 움직이는 방식이다.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해리 윈스턴은 4개의 투르비용이 달린 시계로 눈길을 끌었고, 건축가 시게루 반이 설계한 친환경 건물을 새롭게 선보인 오메가는 5층 높이의 내화성 보관소에 3만여개 부품 상자를 재빠르게 이동시키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공개했다. 오메가의 레이날드 애슐리만 CEO는 "AI가 모든 인력을 대체한다 해도 인간의 상상력과 수백 년 이어진 수공예 능력은 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쇼드퐁·발레드주·비엘=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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