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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세계선수권대회를 망친 수영연맹의 안이한 행정력 …단복도 못만든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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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손기정 선생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집요했다. 사토 코치를 비롯해 시오아쿠, 남승룡과 함께 훈련할 때도 혼자 일장기가 없는 투박한 옷만 고집했다. 유니폼 탓에 사토 코치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손기정은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뒤에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고독과 좌절감을 실루엣으로 남겼다.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부상으로 받은 월계수 화분으로 꽁꽁 가린 채. 이게 바로 유니폼의 상징성을 웅변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게다.

선수라는 개인에서 팀과 국가라는 공동체로의 의식 확장이 유니폼에 숨어 있는 상징성의 요체다. 유니폼을 통해 선수와 팬은 하나로 묶여지며 결속력과 유대감을 공유하게 된다. 스포츠라는 콘텐츠가 인류가 고안한 가장 흥미로운 문화 발명품으로 자리잡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의식의 확장을 통한 국가간 경쟁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내가 너가 되고 너가 우리가 되는 의식의 확장을 통해 흩어진 개인을 탄탄한 집단의 결속력으로 묶어내는 게 바로 스포츠의 사회학이다. 짜릿한 승부를 통해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이 생기며 결국 마음과 마음이 공감하고 공명하는 연대감과 공동체의식을 느끼는 게 스포츠가 지닌 위대한 힘이다. 연대와 결속력 강화에 유니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스포츠에서 유니폼은 그래서 중요하다. 놀이와 스포츠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유니폼에 달려 있다고 보는 건 짜장 틀린 말도 아니다.

유니폼과 관련해서 2019 광주세계선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 주최국 한국이 참가 194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선수단복을 마련하지 못한 채 대회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KOREA’라는 국가명칭은 온데간데없이 후원사의 유니폼과 티셔츠를 입은 선수들의 모습에서 결속과 유대감이 느껴질 리 없다.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규정에 따라 후원사 로고를 테이프로 가린 모습이란. 주최국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하기야 아프리카 최빈국이 국제대회에 참가한다고 해도 적어도 국가이름이 새겨진 유니폼과 티셔츠를 후원하는 기업이 널리고 널린 마당에 스포츠 강국으로 자부하던 한국이 안방에서 주최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수단복을 마련하지 못한 건 부끄러움을 넘어 치욕스런 일이다. 후원사 선정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방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복을 마련하지 못한 건 그 어떤 변명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외부로 알려지자 대한수영연맹과 후원사는 15일 몇몇 종목 선수들의 유니폼에 부랴부랴 ‘KOREA’라는 알파벳 국가명칭을 프린트로 새겨넣기도 했다.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을 뒤늦게 하는 걸로 봐서 이번 단복 문제에는 복잡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자아내게 했다. 대한수영연맹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종목단체다. 관리단체라는 불명예의 사슬을 끊고 지난 2018년 5월 김지용 국민학원 이사장이 새 회장으로 뽑혀 기대가 컸지만 여전히 파열음을 토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김 회장이 약속했던 재정지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리더십과 행정능력이 고작 이 정도라면 한국수영의 미래는 어둡다. 더욱이 연맹의 안이한 행정력이 저비용 고효율 대회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조직위원회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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