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지금껏 체육개혁이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런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혁의 방식과 동력이 약속이나 한듯 똑같았기 때문이다.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정교하고 치밀한 로드맵을 짜서 개혁작업을 진행했더라면 적어도 용두사미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개혁의 어원을 찾아보면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개혁(改革)이란 짐승의 가죽을 까뒤집고 무두질해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것을 뜻한다. 짐승의 날가죽을 뜻하는 ‘피(皮)’와는 달리 무두질한 가죽을 뜻하는 ‘혁(革)’에는 이렇게 숱한 노력과 정교한 기술이 수반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동안 체육개혁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철학이 뒷받침된 강한 의지가 부족했고 개혁이 정교한 로드맵이 아니라 즉흥적인 측면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개혁의 방식도 똑같았다. 문제가 터지면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해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도했다. 이게 바로 체육개혁이 답습했던 실패의 길이다. 이제 더 이상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가지 않았던 새 길을 걸어보며 체육개혁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모색할 때가 됐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체육개혁의 새 길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방식을 탈피하고 개혁의 동력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는 것이다. 이 길을 선택해야 체육개혁의 완성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체육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콘텐츠다. 그 때문인지 정치권 역시 체육의 내재적 가치를 이해하고 존종하기보다는 권력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위로부터의 체육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복잡다단한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논리적 맥락을 꿰뚫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체육개혁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민·관합동기구인 스포츠혁신위원회(위원장 문경란)가 내놓는 잇따른 권고안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현실과 유리된 정책 대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엘리트체육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기저에 깔고 있는 듯 체육을 이분법적 구도로 갈라놓는 치명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 이러한 방식으로 파고를 높이면 결과는 뻔하다. 갈등과 분열 조장은 개혁의 저항감만 높일 뿐이다.
혁신위의 개혁 권고안에 대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엘리트체육 쪽도 일단 격한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함을 되찾는 게 시급하다. 기존 체육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타자와의 경기력에 몰입하느라 시대정신과 시민사회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체육 생태계를 만든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체육개혁은 이제 국민의 열망이다. 체육계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외부의 강제와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따라서 체육계가 내부 개혁의 박차를 스스로 가하지 않으면 외부로부터 굴욕적인 개혁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외부 개입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은 늘 그랬듯 실패로 막을 내렸다. 특히 체육개혁에 정치적 입김이 가세하면 체육계는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가 정치적 셈법에 따라 다른 입장을 내놓는 등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체육계가 ‘여의도의 3류 정치문화’에 오염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강도높은 내부개혁에 나서는 것 뿐이다. 스스로의 개혁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는 곧 체육계의 합의를 이끌어내 더욱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든든한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정과 부패 그리고 반인권적 행태가 체육계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처벌 효과가 미약하다는 방증이다. 범죄학에서 가장 중요한 처벌의 억제효과(deterance)가 한국의 체육생태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의 핵심 열쇠는 역시 처벌(punishment)이 아닐까 싶다. 처벌이 엄중성(severity), 신속성(celerity), 확실성(certainty) 등 세 가지 요소를 갖추게 되면 처벌의 억제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게 범죄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주체의 각성을 통한 내부에서의 개혁, 어쩌면 한국 체육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개혁의 주체가 될 것인가. 선택과 결정은 체육계 스스로가 내려할 몫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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