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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반백살 된 ‘낙원상가’···음악과 사람과 삶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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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반백살 된 ‘낙원상가’···음악과 사람과 삶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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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낙원상가를 찾은 김민구군이 이날 구입한 클라리넷을 처음으로 불어보고 있다. 30년 전 ‘엄마의 엄마’는 이곳에서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악기와 음악인의 ‘성지’로 불리는 낙원상가는 올해 완공 50년이 됐다. /강윤중 기자

엄마와 낙원상가를 찾은 김민구군이 이날 구입한 클라리넷을 처음으로 불어보고 있다. 30년 전 ‘엄마의 엄마’는 이곳에서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악기와 음악인의 ‘성지’로 불리는 낙원상가는 올해 완공 50년이 됐다. /강윤중 기자


“30년 전에 엄마가 이곳에서 피아노를 사주셨어요.”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된 최인영씨(40)가 지난 11일 아들 김민구군(12)을 데리고 낙원상가를 찾았다. 여러 매장을 둘러 본 뒤 중고 클라리넷을 샀다. 민구가 막 시작하는 악기다. “입문을 축하합니다.” 악기를 내오며 축하인사를 건넨 김명수씨(44·근영악기 대표)가 조립과 청소, 소리 내는 법을 간단히 설명했다. 민구가 배운 대로 불어본다. “뿌우~” 몇 차례 시도에 그럴듯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한껏 미소를 짓는다. 지켜보던 엄마도 흐뭇하다.

낙원상가는 악기와 음악인의 ‘성지’로 불린다. 1980년대에 악기상가로 집중 육성돼 현재 300여 매장에서 악기와 액세서리 등 3만여종의 상품을 취급한다. 전성기를 누리던 1970~80년대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음악인들이 ‘인력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긴 세월 상가를 지켜온 상인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축을 이룬 당사자이자 산증인이다.

기타와 반주기 매장(에클레시아)을 운영하는 박주일씨는 국내 1세대 그룹사운드 출신의 장인어른이 1972년부터 운영하던 가게를 25년 전 이어받았다. /강윤중 기자

기타와 반주기 매장(에클레시아)을 운영하는 박주일씨는 국내 1세대 그룹사운드 출신의 장인어른이 1972년부터 운영하던 가게를 25년 전 이어받았다. /강윤중 기자


박주일씨(53·에클레시아 대표)는 기타·반주기 등을 파는 매장을 운영한다. ‘1세대 그룹사운드’ 드러머 출신인 ‘장인 어른’이 1972년에 시작한 가게를 1994년에 이어받았다. 박씨 역시 학창시절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가게 사장이나 직원 중에는 수준급 연주자들이 많다. “<생활의 달인> PD의 제안으로 점심시간 동안 밴드를 급조해 연주한 적도 있습니다.” 불황에 악기시장도 어렵다. 전성기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던 매출이 2010년대에 <수퍼스타K> <쎄시봉>이 뜨면서 1, 2년 반짝 올랐다고 했다. “그때 많이 팔아 지금 장사가 안된다”며 박씨는 크게 웃었다. “행복한 시기에 악기가 더 잘 나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46년째 낙원상가를 지키는 터줏대감이자, ‘한국음악사의 산증인’ 지병옥씨(신광악기 대표)는 65년 경력의 국내 최초, 최고 플루트 수리 전문가다. 그의 가업은 둘째 며느리가 이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46년째 낙원상가를 지키는 터줏대감이자, ‘한국음악사의 산증인’ 지병옥씨(신광악기 대표)는 65년 경력의 국내 최초, 최고 플루트 수리 전문가다. 그의 가업은 둘째 며느리가 이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악기상가에서 46년째 일하는 이곳의 터줏대감 지병옥씨(81·신광악기 대표)는 65년 경력의 플루트 수리 전문가다. 스스로 “음악의 산증인”이라 했다. 지씨는 악사들이 아지트를 충무로에서 낙원상가로 옮긴 이야기, 악기 수리를 맡겼던 유명 연주자들, 악사들이 섰던 잘 나가던 나이트클럽, 지금도 익숙한 포크 뮤지션들의 이름을 대며 그와 상가의 ‘한창 때’를 들려주었다. 80년대 후반 노래방 기기같은 반주기가 등장하고, 연주자들을 불러주는 곳이 사라져갔다. 그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살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앞으로 5년 더 일을 하겠다”는 지씨. 그의 가업은 둘째 며느리가 이어가고 있다.

낙원상가는 우리나라 1세대 주상복합건물로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졌다. 건물은 지하 시장, 상가, 아파트로 구성돼 있다. /강윤중 기자

낙원상가는 우리나라 1세대 주상복합건물로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졌다. 건물은 지하 시장, 상가, 아파트로 구성돼 있다. /강윤중 기자


1969년 완공된 낙원상가는 올해 50년이 됐다. 현재 삼일대로가 지나는 공간(1층)을 비운 채 위로 상가(2~5층)와 낙원아파트(6~15층), 지하의 낙원시장이 들어서 있는 우리나라 1세대 주상복합건물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도심재개발 명목으로 철거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후 세계 최대 악기상가라는 상징성과 건물의 안전성 등 보존가치가 재평가되며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됐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현악기 수리 전문 매장 ‘한양악기’를 운영하는 최신해씨(46)가 ‘악기 나눔’ 행사에 재능기부로 참여해 시민이 기증한 바이올린을 수리하고 있다. 최씨는 악기 수리와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강윤중 기자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현악기 수리 전문 매장 ‘한양악기’를 운영하는 최신해씨(46)가 ‘악기 나눔’ 행사에 재능기부로 참여해 시민이 기증한 바이올린을 수리하고 있다. 최씨는 악기 수리와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강윤중 기자


최근 낙원상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트렌드를 입혀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공연·전시와 플리마켓, 상가투어, 악기 나눔, 반려악기 캠페인 등 친근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뒤로 묶은 머리에 멋스러운 모자를 눌러 쓴 강원목씨는 악기상가 소파에 앉아 베이스기타를 치며 하루를 보냈다. 산책 삼아 자주 상가에 나온다는 강씨는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뒤로 묶은 머리에 멋스러운 모자를 눌러 쓴 강원목씨는 악기상가 소파에 앉아 베이스기타를 치며 하루를 보냈다. 산책 삼아 자주 상가에 나온다는 강씨는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반백의 긴 머리를 묶고 페도라를 눌러 쓴 강원목씨(58)는 상가 소파에 앉아 앰프를 연결하지 않은 베이스기타를 치며 하루를 보냈다. “산책 삼아 나와요. 뭐, 한량이죠. 하하하.” 음악이 생활이 되었다는 강씨는 악기를 연주하는 순간에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대화를 마치자, 그는 곧바로 기타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1969년 낙원상가 완공 당시의 현판이 건물 외벽에 그대로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1969년 낙원상가 완공 당시의 현판이 건물 외벽에 그대로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낙원악기상가의 진정한 가치는 지난 세월 오고 간 수많은 사람과 상인이 쌓아온 이야기가 아닐까. 낙원상가는 100년을 향해 새로운 50년을 시작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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