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는 이정은6. [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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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6(23)도 그렇다. 아주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살았다. 프로가 되어선 별로 기분 좋지 않을 수도 있는 6이라는 숫자를 받았다.
KLPGA에서 5번을 달고 뛰던 동명이인 이정은(31)은 미국 LPGA 투어에서 숫자를 떼고 그냥 이정은으로 선수생활을 한다. 이정은6도 LPGA로 가면서 번호표를 뗄 수 있었다. 이정은5와 영문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숫자가 없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6을 달고 갔다.
미국인들은 숫자가 들어간 이름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한다. 2017년 이정은6이 US오픈에 나가 우승경쟁을 할 때 미국 골프계에서 화제가 됐다. 미국 방송에서는 여러 차례 이정은6의 이름을 거론했다. 행크 헤이니처럼 이름을 조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정은6은 당당하다. 그는 “흔한 내 이름이 싫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들 불운의 숫자라며 꺼리는 6이라는 숫자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6이라는 숫자는 행운이 됐다. 한국에서 처음 우승할 때 최종라운드 6언더파 66타를 쳤다. KLPGA에서 6승을 했다. 개인 최저타 기록은 60타다.
그는 "6을 붙인 후엔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면서 아예 별명도 6이 들어가는 ‘핫식스’로 했다. 공에도 큼지막하고 두껍게 6이라고 마크한다.
3일 우승한 US오픈에서도 6은 자주 등장했다. 3라운드 끝난 후 이정은6은 6등이었고, 최종 합계 6언더파로 우승했다. 이정은6이 볼에 그린 6자는 여러 차례 중계방송 화면에 잡혔다.
이정은6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우승컵. [사진 프리랜서 권상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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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성 골프 비하 논란이 터졌다. 헤이니는 사과했고 라디오 방송 출연이 정지됐다. 타이거 우즈도 헤이니를 비난했다. 그 논란 속에서 '6번을 붙인 이 씨'인 이정은6이 우승했으니 아주 드라마틱했다.
헤이니는 조롱 섞인 발언을 하다 결과적으로 우승자를 맞힌 셈이 됐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 "(한국인 이씨가 우승한다는) 나의 예상은 통계와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한 단어로 답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정은에게 축하 메시지를 올렸으나 영문 표기를 틀렸다. 문제가 된 방송에서 그는 "여자 골프를 보이콧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화제가 됐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반면 이정은6은 평범한 이름을 당당하게 여겼고 불운의 숫자 6을 행운으로 바꿈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US오픈에서 우승해서만이 아니라, 골프에서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이야기를 남겨서다.
이정은6은 공에 6자를 쓴다. US오픈 최종일에는 빨간색으로 6을 그렸다. [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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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KLPGA 등에서 선수 이름에 숫자를 붙이는 행태는 재고해야 한다. 이름 뒤 숫자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양만이 아니다. 부모님이 주신 이름에 묻지도 않고 숫자를 갖다 붙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숫자가 붙으니 사람이 일련번호 붙인 물건 같은 느낌이 든다. 당사자라면 더 할 것이다.
KLPGA나 KPGA에서 현역 투어 프로가 아닌 일반 회원들을 제외하면 동명이인 숫자는 확 줄어든다. 그래도 동명이인이 나오면 뒤에 고향을 붙인다든지 등의 다른 방법을 써야 옳다. 원래 엘드릭 톤트 우즈였던 이름을 개성 있는 타이거 우즈로 바꾼 사례도 고려해볼 만 하다.
한국인의 이름 풀이 적은 것은 순혈주의와 튀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이정은6처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당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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