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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경향신문 '해외축구 돋보기'

[해외축구 돋보기]승격보다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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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잉글랜드 챔피언십 리즈 유나이티드와 애스턴 빌라 선수들이 28일 엘런드 로드에서 열린 45라운드 경기 도중 서로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빌라 선수들은 선수가 쓰러져 있는데도 리즈가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진행해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골을 넣었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이로 인해 경기가 5분여간 중단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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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광인’으로 불리는 마르셀로 비엘사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은 28일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상대 수비진을 파훼하거나 축구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술을 들고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리즈 팬들의 17년 염원이 담긴 프리미어리그 자동 승격을 향한 절실함과 경계가 불투명한 페어플레이 사이에 그가 서 있었다.

사달이 벌어진 건 애스턴 빌라전 후반 32분이었다. 빌라 공격수 조나단 코지아가 리즈 선수와 충돌하며 그라운드 중간 부근에서 쓰러졌다.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았지만 빌라 선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빌라 선수들은 볼을 아웃시키라고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쓰러진 선수가 있을 경우 볼을 밖으로 내보내 경기를 중단시킨 뒤 상태를 보거나 치료하게 하는 건 축구의 오랜 불문율이다. 리즈 선수들의 생각은 또 달랐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지 않은 만큼 경기를 중단할 필요가 없었다. 볼이 빌라 진영 왼쪽에 있던 마테우스 클리츠에게 연결됐다. 클리츠가 뒤늦게 달려온 빌라 선수를 제치고 오른발로 감아찬 볼이 파포스트쪽으로 빨려들어갔다. 1-0. 실낱같지만 프리미어리그 자동 승격의 희망을 살린 골에 리즈 팬 3만6786명이 모인 엘런드 로드 구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러나 얼떨결에 일격을 맞은 빌라 선수들이 클리츠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항의하면서 그라운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존 테리 코치를 비롯한 빌라 벤치도 비엘사 감독에게 몰려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골이라고 따졌다. 이 소동으로 경기는 5분간 중단됐다.

비엘사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빌라에게 보상골을 내주라”고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리즈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가만히 서 있는 가운데 빌라 미드필더 앨버트 아도마가 혼자 드리블해 들어가 동점골을 터뜨리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잉글랜드 2부 ‘리즈 유나이티드’

빌라 선수 쓰러진 상태서 골 넣자

감독 비엘사 “보상골 내줘라” 지시


경향신문

마르셀로 비엘사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


경기는 결국 1-1로 끝났다. 2위 셰필드와의 승점차가 5점이 되면서 남은 한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셰필드의 자동 승격이 확정됐다. 3위 리즈는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려면 3~6위팀이 겨루는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한다. 시즌 내내 자동 승격권에 있었던 리즈였기에 플레이오프행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페어플레이를 택한 비엘사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17년 만의 승격 대신 ‘페어플레이’

승강 플레이오프 거치게 됐지만

감독 스포츠맨십에 찬사 이어져


크리스 와일더 셰필드 감독은 “비엘사는 진정한 축구인이다. 분명히 그들에게 불리했지만 비엘사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도 “비엘사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경의를 표했다. 벵거는 “경기를 중단시키는 것은 선수가 아니라 주심”이라며 “빌라 선수들은 리즈 선수들이 볼을 아웃시키기 전까지 경기에 집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리즈 팬들 사이엔 “선수가 쓰러진 가운데 들어간 골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빌라에 골을 선사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래도 비엘사는 당당하고 쿨했다. “우리가 빌라에게 골을 선물한 게 아니다. 우리가 빼앗아온 것을 돌려줬을 뿐이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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