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세리머니 아약스 주장인 마테이스 더 리흐트(아래)가 17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유벤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잔디 위를 미끄러지며 동료들과 함께 골 세리머니를 즐기고 있다. 토리노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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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젖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아래 사진)의 멍한 눈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입은 벌려져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호날두의 모습에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무기력감, 회한이 묻어났다. 그는 최근 4년 동안 두 번이나 결승에서 무너졌던 유벤투스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우승청부사’였다. 그런 그도 유벤투스의 꿈을 이뤄내지 못했다.
17일 홈구장인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약스와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전반 28분 수비 뒤를 돌아가는 절묘한 움직임으로 선제 헤딩골을 터뜨렸을 때만 해도 호날두의 챔피언스리그 신화는 계속되는 듯했다. 개인 통산 126번째 챔피언스리그 골. 더군다나 호날두는 지난 11번의 8강전에서 탈락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겁없는 젊은 군단 아약스의 저력과 잠재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질주, 수비의 허를 찌르는 짧은 패스로 아약스는 경험 많은 유벤투스 수비를 마구 뒤흔들었다. 전반 34분 도니 반 데 비크(22)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22분 마타이스 데 리트(20)의 헤딩골이 터지며 2-1 역전. 알리안츠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유벤투스 팬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4강을 위해 두 골이 필요했던 유벤투스는 끝내 점수를 뒤집지 못하고 홈에서 탈락의 수모를 맛봐야 했다.
아약스는 ‘도장깨기’의 진수를 보이며 4강에 오르는 파란을 연출했다. 지난해 9월만 해도 아약스는 우승 확률이 250분의 1에 불과한 아웃사이더였다. 프랭키 데 용(22)과 데 리트, 다비드 네레스(22) 같은 전도양양한 젊은 유망주들이 포진한 미래의 팀 정도로 여겨졌다.
오판이었다. 16강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자 3연패에 빛나는 레알 마드리드를 원정에서 4-1로 격침시켰고, 8강에서도 호날두가 버티는 전통의 유벤투스마저 원정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재능의 조화, 여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에 대한 믿음, 해낼 수 있다는 용기가 결합되면서 누구도 예상 못한 이변의 진군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약스 젊은피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18살 때 A매치에 데뷔할 정도로 이미 ‘괴물 수비수’로 불리던 데 리트는 네덜란드 수비수로는 최연소 챔피언스리그 골 기록(19세9개월4일)을 결승골로 만들어냈다. 데 리트는 이날 걷어내기도 10개나 기록하며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시즌 후 바르셀로나로 합류하는 데 용도 아약스의 리듬을 완벽하게 조율하며 승리의 숨은 주역이 됐다. 반 데 비크와 네레스도 두산 타디치(31), 하킴 지예흐(26) 등 베테랑들과 함께 변화무쌍하고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으로 올드 레이디(유벤투스 별명)를 그야말로 ‘늙게’ 보이게 만들었다.
아약스는 맨체스터 시티-토트넘전 승자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아약스가 1995년 이후 24년 만에 정상에 오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젊은 군단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트위터 ‘풋볼스터프’는 아약스에 이런 찬사를 보냈다.
“이 아약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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