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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패스트볼 안 되면 체인지업…꾀돌이 류현진 2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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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범가너와 맞대결서 완승

7이닝 2실점 6피안타 5삼진

다저스 제1선발 자리 굳혀가

로버츠 감독 “패턴 없어 더 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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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다저스 류현진이 개막전에 이어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도 승리를 따냈다. 앞선 경기와 다른 투구 패턴으로 상대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게 주효했다. [USA 투데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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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7.6%.

메이저리그 개막 이후 두 경기에서 나타난 류현진(32·LA 다저스)의 서클 체인지업 구사율 변화다. 나흘 만에 전혀 다른 투수가 된 것 같았다.

류현진은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단 2점만을 내주며 호투했다. 안타는 6개를 내줬고, 삼진은 5개를 잡았다. 다저스가 6-5로 힘겹게 이겨 류현진은 시즌 2승에 성공했다. 개막 후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한 그의 평균 자책점은 2.08이 됐다.

과정은 힘겨웠다. 류현진이 1회 초 선두타자 스티븐 두가르에게 던진 초구는 시속 144㎞의 속구(패스트볼)였다. 좀 더 힘을 내서 던진 2구 속구 스피드도 143㎞였다. 어렵게 삼자범퇴로 막은 1회 투구 수는 11개. 이 중 패스트볼이 8개나 됐지만 그렇게 위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민철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공을 제대로 채지 못하고 있다. 최고 컨디션이 100이라면 오늘은 70 정도”라며 걱정했다. 류현진은 지난달 29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시즌 개막전(6이닝 4피안타·8탈삼진 1실점)에선 강력한 회전이 걸린 패스트볼을 던졌다. 투구 수 82개 중 39개(47.6%)가 빠른 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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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 대량 득점의 물꼬를 튼 류현진. [USA TODAY=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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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샌프란시스코 4번 타자 버스터 포지에게 2회 초 패스트볼을 던져 안타를 맞자 류현진은 전략을 확 바꿨다. 패스트볼 구위가 떨어진 날에는 컷패스트볼도 함께 약해진다. 그래서 2013년 최강의 무기였던 체인지업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류현진은 2회 1사 1루에서 얀게르비스 솔라르테를 2루수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위기를 넘겼다. 몸쪽 빠른 공을 찔러넣은 뒤 2구째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류현진은 이날 새로 이적해 온 베테랑 포수 러셀 마틴(36)과 처음으로 배터리를 이뤘다. 그러나 공배합의 주도권은 류현진이 갖고 있었다. 류현진이 3회 초 선두타자 코너 조에게 던진 공 5개는 모두 오프스피드 피치(스피드를 떨어뜨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였다. 조를 2루수 뜬공으로 잡은 결정구는 체인지업이었다. 갓 데뷔한 신인의 조급한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2사 후 만난 9번 타자는 샌프란시스코 선발 투수 매디슨 범가너(30)였다. 류현진은 1볼-2스트라이크에서 마틴의 사인을 두 차례나 거부했다. 결국 류현진의 뜻대로 던진 체인지업이 뚝 떨어지면서 범가너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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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구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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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한국에서 뛸 때부터 포수의 사인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마틴은 과거 데이터를 근거로 패스트볼을 많이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상황에 따라 재빨리 전략을 바꿨다. 패스트볼을 힘껏 채지 못해 공이 밀리는 듯하자 체인지업 비중을 높였다. 이날 그의 체인지업 비중은 27.6%(87개 중 24개)에 이르렀다. 대부분 결정구였다.

다저스는 3회 말 코디 벨린저의 만루홈런 등으로 5-0으로 앞섰다. 이후 류현진의 능구렁이 같은 피칭이 더욱 빛났다. 5회 초 삼자범퇴를 시키며 던진 공은 7개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무려 6개가 체인지업이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오프스피드 피치의 정수였다. 지휘자가 단상 위에서 멋진 변주곡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류현진은 다저스타디움의 마운드 위에서 현란한 피칭 변화를 보여줬다.

경기 후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류현진은 패턴이 없는 투수다. 상대에게 정말 치명적이다”라며 극찬했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은 잘 던지는 구종이었는데 (2015년 왼 어깨) 수술 후 제구가 잘 안 됐다. 그게 요즘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류현진의 변칙 투구는 5-0으로 앞선 6회 초 위기를 맞았다. 1사 후 헤라르도 파라에게 커브를 던져 좌전안타를 맞았고, 이어 상대 투수 범가너에게 컷패스트볼을 던졌다가 투런 홈런을 맞았다. 넉넉한 점수 차를 고려해 힘을 비축하다가 일격을 당한 것이다. 류현진은 이후 연속안타를 맞았지만, 추가 실점하지 않았다. 구위가 떨어진 상황에서도 정확한 제구로 버텼고, 결국 이겼다.

개막전에서 류현진은 지난해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선수 잭 그레인키(3400만 달러·385억원)를 꺾은 데 이어 이날은 2014년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 범가너도 이겼다. 2경기에서 13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클레이턴 커쇼(31)의 왼 어깨 부상 때문에 대타로 개막전 선발로 나선 류현진은 보란 듯이 상대 에이스를 연파하고 있다. 정민철 위원은 “류현진은 ‘1선발 대행’이 아니라 ‘진짜 1선발’ 같다”고 말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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