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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이 없다. 한국 체육계가 뿌리 깊은 폭력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체육회 산하 단체의 무관심과 외면, 방치 속에 곪아있던 부위가 드디어 터지고 있는 형국이다.
프로야구 뿐 만 아니라 아마야구계도 지난 몇 년간 혹독한 몸살을 앓았다. 만년 사고 단체로 낙인 찍혀 있었던 대한야구협회가 지난해 8월에 뒤늦기는 했지만 마침내 소프트볼과 화학적인 결합을 마치고 온전한 학교야구, 생활체육, 소프트볼 3개 조직의 통합단체로 등록, 비로소 제자리를 잡았다.
그 뒤에는 2016년 11월 30일 야구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응룡(78) 회장의 노고가 깔려 있다.
그가 야구협회장으로 자리를 잡은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야구행정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만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학원 폭력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데다 대학야구의 고사위기, 리틀 야구부터 고교야구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학부모부담 등 여러 현안이 여전히 그의 앞에 가로놓여 있다.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추진했던 실업야구 부활도 좀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일은 협회의 제도 정비로 완화시킬 수 있지만, 어떤 일은 아주 구조적인 문제여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선수와 학부모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도 있다.
새해 들어 김응룡 회장을 만나 야구계 현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봤다. 김응룡 회장은 만나자마자 대뜸 “뭐, 나쁜 일은 아니지? 요즘 체육계가 아주 난리데.”라며 체육계 성폭력 사건을 말머리에 올렸다. (1월 14일에 가진 인터뷰 자리에는 이준성 협회 홍보이사가 배석했다)
-지난해에 선동렬 국가대표팀 감독이 국회 불려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겠습니다.
“(싸잡아서) 야구를 깊이 몰라서 그래. 딴 종목도 마찬가지 아니나. 감독을 시켰을 때는 그 사람 야구를 하라고 시킨 것인데, 성적 나쁘면 자르면 된다. 선수 선발한 것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는데 감독한테 전권을 주는 게 맞다. 사표를 던진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잘 관둔 것이다. 자존심을 가지고 먹고 사는데, 자존심이 여지없이 상했으니. 사실 대표 팀 감독 연봉이 프로야구 감독 최저 연봉도 안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KBO가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줘야지.”
-야구 원로 분들이 정운찬 KBO 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대표 팀 운용과 관련해서도 조언을 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독 나이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고 합니다만.
“나는 그 얘기는 안 했다. ‘프로야구도 이제 40년이 됐으니까, 프로선수 출신들이 앞장서서 해야 야구 발전이 있지. 아마, 프로 실력 차이가 많이 나니까.’ 그런 얘기는 했다.”
-병역 미필자 대표 선발은 어떻게 보십니까. 불가피한 겁니까.
“다른 종목에서도 부러워하잖아. 동기부여가 되잖아. (미필자가) 워낙 실력 차이가 나면 안 되겠지만 열심히 할 수 있는 선수를 뽑는 게 좋잖아. 억지로 하는 것보다 죽자 사자 하는 선수들이 낫잖아.”
-지난해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아마 야구에서 한 명도 없었던 것을 두고도 말이 나왔지요. 예전 대표 팀에는 상징적으로도 한두 명은 있었는데.
“(그렇게 뽑으면)부작용이 많이 생긴다. (아마선수를)잘 못 뽑으면 너무 말이 많게 된다. 무슨 선발대회를 열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 대학선수들은 고등학교 선수들보다도 실력이 못하다. 실력이 안 되니까 못 뽑는 것이다. 실력이 안 되는 선수를 뽑으면 더 큰 문제다. 그런 식으로 하면, 고교, 대학 모두 선발 경기를 해야 할 판이다. 앞으로 아시안게임 등 아마추어 선수를 뽑을 때는 선발대회를 하든지 해야지, 기준을 어떻게 두나”
-현실적으로 올림픽 같은 큰 국제대회 대표 팀 구성은 KBO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시네요. 아마야구 수장이 너무 힘을 안 쓴다는 불만의 소리도 있었는데.
“실력 차이가 나는 거를 어떻게 하나. 지난해에 선동렬 감독한테도 ‘국가와 국가 대항전인데, 최강의 멤버로 하라. 아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학에서 불만이 있는 것은 알지만. ”
-4년제 대학 선수들의 학습권 문제 등으로 인해 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실력 양성이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대학야구는 주말리그 위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대학야구는 성인야구다. 어느 나라가 주말야구를 하나.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데. (대학야구는)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연습 부족이다. 미국 대학야구는 어떻게 하는데. 왜 (대학)야구만 미국식으로 안하나. (미국대학야구는) 평일 오후 5시에 시작하고, 주말에는 더블헤더 한다. 자기 시간표를 자기가 작성한다. 그래서 일 년에 백 게임씩 하는 것 아니냐. 프로 바로 밑단계가 대학야구다. 주말리그만 해서는 안 된다. 대학선수들이 적어도 연간 80~100게임은 해야 한다.”
-안우진(20. 키움 히어로즈)의 고교시절 폭력 사건이 계속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협회가 3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프로와의 효력 연계성 문제 등이 대두되고 있지요. 학원스포츠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장치가 보다 정교해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기요하라, 구와타 같은 유명 선수를 배출했던 일본의 야구 명문 PL 학원은 폭력사태로 야구부를 없애기까지 했다)
“사건이 일어나면 개인 제재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본식으로 학교에 출전 금지를 시키고 그래야지. 근본적인 책임은 학교에 있다. 사건이 일어났는데 학생 징계만 하면 안 된다. 학교에도 경고를 줘야한다. 몇 팀 되지도 않는데 해산시킬까봐 여태껏 겁이 나서 (학교 제재를) 못해왔는데, 이젠 원칙대로 해야 한다. 선수영구제명, 학교 출장정지 등을 단순한 엄포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학교 지도자는 교사나 마찬가지다. 사고가 나면 교장이 책임을 져야한다. 앞으로 감독, 코치 징계만 할 게 아니라 학교(교장)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폭력사건이 생기면) 시범적으로도 야구부의 출전금지 등 학교의 책임을 묻겠다.”
(안우진은 고교 3학년 때의 야구부 폭력사건으로 인해 전원 야구협회 외부 인사로 구성된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3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 ‘고교야구가 썩었다’는 얘기가 있지요. 실제로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선수 한 명당 500만 원 이상 든다고 합니다. 게다가 서울지역 선수들은 물론 지방고교 선수들도 개인 과외 수업을 받기 위해 다른 비용도 들여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해외전지훈련을 통제할 수는 없는 건가. (서울과 수도권에 개인교습을 해주는 프로선수 출신들의 교습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학생야구의 정상화의 걸림돌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전지 훈련비를 못내는 학생들은 훈련에서 배제하는 일도 생겨났다.)
“학부형들의 욕심 학교 훈련가지고는 안 되고 마음에 안 드니까. (정규 공부로는 성이 안차니까)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예전처럼 가난한 집안 학생이 야구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학부모 부담을 줄여 주려고) 해외 전지훈련을 최대한 억제하고 고교대회 시즌을 원래 3월 개막에서 4월로 늦추는 등의 조치도 취했지만 학부모들의 반발도 심하다. 전지훈련은 교장한테 달렸다. 일본은 추운 삿포로에서도 학내에서 훈련을 한다. 학생야구가 전지훈련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 당국에서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학생야구인데도 한 팀에 지도자들이 네댓 명에 전부 돈을 받는다. 프로나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돈 있는 사람들은 개인코치까지 쓰고.”
-실업야구 팀 만드는 것이 당면 과제지만 표류하고 있습니다. 야구계 일자리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야구선수라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특혜논란이 일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 없어 지지부진하다.”
(실업야구 팀 운영과 관련,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선수 20~30명 규모의 실업팀 운영에는 한해에 최소 2, 30억 원은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게는 60억~70억 원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중· 고교 팀 창단 때처럼 KBO의 협조를 얻어 창단지원금을 주는 것도 프로야구단들의 설득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회장 취임 이후 소프트볼협회와의 통합 작업에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돈이 끝났지요.“취임 당시 대한야구협회와 생활체육, 소프트볼 모두 사고단체였다. 1년 반이나 끌어서 명실상부한 통합이 됐다.”
-재정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는가요. KBO 지원금은.“다른 종목과 달리 3개 단체를 통합하다보니 직원은 늘어났으나 예산은 줄어들었다. 어려움이 많다. 고용승계를 하다 보니.”
(KBO는 대한야구협회에 2017년에 12억, 2018년과 올해는 연간 15억 원의 지원금을 주고 있다.)
김응룡 회장은 그동안 난마처럼 얽혀 있던 야구협회의 문제들을 ‘원칙대로’ 풀어내고 정상화를 시켜놓았다. 아직 해결해야할 일이 남아 있지만 단기간에 정리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야구계 전체로 열려 있다. “한국 프로야구가 40년이 됐으면 KBO 육성위원회도 제대로 활용해 쓸 만한, 말 발이 서는 지도자 인력을 확보하고 여러 지역의 요청에 봉사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그래야 야구가 산다.”는 김 회장의 말은 야구계의 앞날은 진정 걱정하는 원로의 시선이 담겨 있다.
1977년 니카라과 월드컵야구대회에 불과 서른일곱 나이로 대표 팀 감독으로 출전, 우승을 일궈냈던 그였다. 해태 타이거즈에서 9회, 삼성 라이온즈에서 창단 후 첫 우승을 이끌었던 명실상부한 백전노장이 오늘에 이르러서 야구행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야구협회장만 안 했으면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 텐데….”하는 그의 농담어린 말이 그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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