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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취재파일] 노장(老將) 박항서의 꿈,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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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이라크 상대 아시안컵 1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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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의 꿈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환갑(還甲)을 넘어 꿈을 이루기도 한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달 15일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동남아시아 정상으로 이끌고는 "지도자 생활 중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기뻐했다. 1959년생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1957년생이니, 우리 나이 62세에 맛본 기쁨이었다.

그날 밤, 베트남 전역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경기 취재를 마치고도 우승 세리머니와 공식 기자회견, 공동 취재구역 인터뷰를 마치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 주변은 여전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만 인파가 일으킨 파고(波高)는 겁이 날 정도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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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하노이의 밤, 박항서 감독은 그곳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다. 따로 인터뷰 약속을 성사시키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물리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차로 20분 거리. 여간 험난한 여정이 아니었다. 차도(車道)와 인도(人道)의 구분은 없었다. 차 사이사이를 오토바이와 사람이 메워 자동차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인도에서도 한 발, 한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북새통에서 만난 얼굴은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恨)을 풀어냈던 우리가 그랬듯.

베트남 팬들은 "박항서 감독이 우리의 꿈을 이뤄줬다"고 입을 모았다. 박 감독의 얼굴을 몸에 그린 팜반 흐엉 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민족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이 크지만 자신감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면서 "감독님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베트남 대표팀 골키퍼 부이 티엔 둥 역시 "감독님은 나이도 많으신데 아들뻘 선수들을 마음을 다해 섬세하게 대하시며 꿈을 키워주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새벽이 깊어 박 감독을 만났다. 노장(老將)에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환한 표정으로 "황홀하고 뭉클하다"고 했다. "지도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희로애락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느지막하게 이런 기쁨이 왔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도전에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박 감독은 서툴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2002년 월드컵 직후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지만 대한축구협회와 불편한 관계 속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왔다. 이후 시도민구단, 군인팀 등 약팀을 맡아 성과를 냈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갈수록 주류에서 밀려 아마추어리그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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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생이란 게 그렇지 않냐"며 여유 있게 돌아봤다. "인생엔 우여곡절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픔도 있었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그런 굴곡진 삶이 저 자신을 튼튼하게 해준 면도 있고,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겪어 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조금 더 슬기롭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가 생긴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지도자 박항서는 자리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최순호 감독을 보좌해 포항 코치로 뛰었고, 어느 자리에서든 열정적이었다. 불같이 뜨거워 주변과 자주 갈등을 빚었지만 늘 겸손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며 성실하게 준비했고, 경질된 뒤엔 부지런히 현장 복귀를 준비했다.

"도전을 하는 데 나이는 상관이 없습니다. 해 봐야 성공과 실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박항서 감독은 2019년, 힘겨운 도전으로 새해를 맞는다. 베트남은 아시안컵에서 이란, 이라크, 예멘과 '죽음의 조'에 속했다. 많은 이들이 만류했다. 지금의 열기와 인기, 높아진 베트남 축구팬들의 기대를 생각하면 정점(頂点)에 선 지금이 '박수받으며 떠날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또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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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시는 대로 올해 베트남 대표팀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또 비난 속에 물러나게 되겠지만 나는 베트남 축구협회와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아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박 감독이 생애 가장 뜨거운 연말을 보내던 지난달 27일.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 전태관 씨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그에게 위로받은 많은 이들에겐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하다.

"힘든 일도 있지/드넓은 세상 살다 보면/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63살. 노장은 다시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 베트남 대표팀 아시안컵 D조 일정
8일 오후 10시 30분 이라크:베트남
12일 오후 8시 베트남:이란
17일 오전 1시 베트남: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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