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새해 벽두부터 체육계가 시끄럽다. 구랍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체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체육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반기를 들 사람은 별로 없다. 선거 때마다 시도·체육회가 정치조직으로 변질되는 슬픈 모습은 정치로부터 체육이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그렇다면 체육계는 왜 체육의 일탈을 바로잡는 명분있고 가치있는 법률 개정안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의 생각과 살아 움직이는 현실 사이의 간극과 괴리가 큰 탓이다. 법 개정의 취지와 명분은 공감하지만 체육인들이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의 근간인 지방체육이 자칫 정치의 또 다른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안이 나돌 때마다 체육계는 가장 먼저 재정의 안정성과 팀 해체 문제를 우려했다. “지자체장과 정치노선이 다른 인사가 시·도체육회장에 뽑혔을 때 지방체육 예산이 급격히 줄거나 애써 육성해놓은 팀이 해체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말짱 허황된 것도 아니다. 지자체장 교체기에 석연찮은 이유로 체육팀이 해체된 경우가 심심찮았다는 사실은 이 같은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되곤했다.
지자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안이 국회 본회의을 통과한 마당에 이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법률 개정안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법 개정이 논의될 때 체육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는 사실은 아쉽다. 체육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야할 대한체육회가 법률 개정안 논의에서 배제된 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정치권이 대한체육회를 카운트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던 정황이 여기저기 감지되고는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체육회는 법률개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치권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어야 했다. 지방체육 육성과 보호라는 측면에서 예산절감과 체육팀의 무분별한 해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체육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체육계가 논리와 명분에 맞는 법률 개정안 통과에 어깃장만 놓는 모양새도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체육계에서 걱정하는 지방체육의 예산절감 문제는 일종의 ‘공포의 가설’이다. 다양한 의견이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공포의 주입이라고 봤을 때 체육계도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실화되지 않은 가설에 미리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기 보다는 체육인들 스스로가 체육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지자체가 체육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다. 지방체육 예산을 줄이는 빌미가 되는 비리를 근절하고 체육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공포의 가설’을 극복하는 새 시대의 현실적 대안일 듯 싶다.
지자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는 그 명분과 취지를 제대로 살린다면 체육계로선 오히려 더 큰 축복이 될 수 있다. 시·도체육회장에 전문성을 지닌 체육인들이 대거 입성하면 체육의 위상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체육의 자율성을 위한 법률 개정이 예산절감 등 체육의 정치 예속화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건 모순의 극치다. 따라서 체육계가 우려하고 있는 지방체육의 예산 절감 문제는 체육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전선을 구축해 함께 지켜내는 게 옳다. 이번 법률 개정안에 앞장섰던 국회의원들은 공동전선의 선봉에 서야할 사람들이다. 만에 하나 체육인들이 우려했던 ‘공포의 가설’이 현실화될 경우, 그 1차적 책임은 누가 뭐래도 새 정책을 제안한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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