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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주말골퍼 `버디값` 하듯…프로골퍼는 `우승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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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7월 열린 한 국내 여자골프 대회에서 같이 경기하고 있는 오지현(오른쪽)과 김자영. 오지현은 올해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퀸`이 됐지만 이어진 대회에서는 두 번 연속 컷 탈락하는 기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 제공 = 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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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올해 최고의 샷은 단연 7월 열린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나온 박성현(25)의 해저드 샷이다. 최종 라운드 16번홀에서 박성현은 해저드 지역에 빠진 공을 박세리의 '맨발 투혼'을 떠올리게 하는 기적 같은 샷으로 파 세이브에 성공해 끝내 우승으로 연결했다.

일반적으로 동화 같은 스토리의 마지막은 "그리고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과연 박성현도 '해피엔딩'으로 끝난 메이저 우승 뒤 그다음 대회에서도 당시 분위기를 이어갔을까? 최고의 샷을 쏘면서 우승한 만큼 상승세를 이어서 적어도 '톱10'의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다. 우승의 기운을 받고 출전한 다음 대회인 손베리 크리크 LPGA 클래식에서 박성현은 허무하게도 컷 탈락을 했다.

주말골퍼의 세계에는 '버디값'이란 게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버디를 잡은 후 흥분한 나머지 그다음 홀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샷 실수를 자주 한다고 해서 나온 용어다. 프로골퍼들에게 비슷한 게 있다면 바로 '우승값'일 것이다. 실제로 우승한 후 다음 대회를 망친 선수들이 은근히 많다. 올해 성적만 놓고 보면 남자골퍼보다는 여자골퍼들이 '우승값'을 한 경우가 많았다. 올해 3승을 거둔 박성현이 대표적이다.

박성현의 올해 첫 우승은 5월 초 열린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LPGA 텍사스 클래식이다. 시즌 첫 승의 감격만큼 우승값도 혹독했다. 그 우승 후 3주가 지나긴 했지만 다음 출전 대회인 볼빅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을 했다. 그 정도로 끝난 게 아니다. 이어진 2개 대회에서도 컷 탈락을 하며 3연속 컷 오프의 쓴맛을 봤다. 세 번째 우승 대회인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 후 치른 다음 대회(CP 위민스 오픈)에서는 그나마 공동 8위로 선전했다. 사실 골프팬들은 그런 박성현의 '닥공골프'를 좋아한다. '남달라' 박성현은 우승값도 남다르다.

역시 3승을 거둔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반대로 우승값을 하지 않는 대표적인 선수다. 연승은 없었지만 세 번의 우승 후 두 번은 '톱10'에 들었고 한 번은 12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박성현이 컷 탈락한 대회인 볼빅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상금랭킹 2위까지 오른 호주동포 이민지도 이어진 출전 대회에서 톡톡히 우승값을 했다. US 여자오픈에서 공동 34위로 부진하더니 그다음 대회인 숍라이트 LPGA 클래식에서는 컷 탈락을 했다. 두 번밖에 컷 탈락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샷을 날렸던 이민지조차도 우승의 흥분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박성현, 쭈타누깐과 함께 '다승' 선수 중 한 명인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도 마찬가지다. 두 차례 우승을 한 그는 한 번은 컷 탈락이 이어졌고, 또 한 번은 공동 21위로 부진했다.

LPGA 최저타(31언더파 257타)로 손베리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김세영 역시 그 우승값을 피해가지 못했다. 파죽의 버디 행진을 벌이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다음 대회인 마라톤 클래식에서는 공동 53위로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가까스로 컷 탈락을 모면한 수준이다.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박인비와 메이저 최다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페르닐라 린드베리(스웨덴). 모든 예상을 뒤엎은 그 우승 이후 20개 대회에 출전한 린드베리의 골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다시 하위권을 맴돌던 예전으로 돌아갔다. 딱 한 번 톱10에 들었는데 그것도 공동 10위였다.

국내 여자골프 무대에서도 뼈아픈 '우승값'을 한 선수들이 꽤 있다. 비록 상복은 없었지만 대상 포인트 2위, 상금랭킹 3위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오지현. 그의 샷도 우승 후 망가지는 아픈 경험을 톡톡히 했다.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메이저 퀸'에 올랐던 오지현은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이어진 비씨카드 한경레이디스컵과 맥콜·용평리조트오픈에서 연달아 컷 탈락의 쓴맛을 봤다. 올해 기록한 두 번의 컷 오프가 메이저 퀸에 도취돼 있을 때 몰아 나온 것이다.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던 박결 또한 다음 대회 성적이 신통치 않다.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출전한 86명 중 65위를 기록했다. 컷 탈락 없이 진행된 대회여서 중간에 짐을 싸지는 않았지만 다른 대회였다면 그 역시 컷 탈락을 당했을 성적이다.

올 시즌 LPGA 마지막 대회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렉시 톰프슨(미국)은 아직 '다음 대회'를 치르지 않았다. 과연 그의 새해 첫 대회 성적은 어떻게 나올까. '우승값'을 할까, 하지 않을까.

[오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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