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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송지훈의 축구.공.감] 박항서 매직, 그리고 하노이의 잠 못 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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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컵 우승 직후 박항서 감독을 헹가래치는 베트남 선수들. [VN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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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컵 우승 직후 베트남 축구팬들이 하노이 시내로 몰려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하노이=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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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월드컵 당시 전국을 뜨겁게 달군 붉은악마의 응원 열기. 베트남 우승 장면과 닮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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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2002한ㆍ일월드컵 4강전은 한국 축구가 세계 정상의 문을 노크하다 아쉽게 도전을 멈춘 무대다. 당시 관중석에서, 또는 TV로 경기를 지켜 본 축구팬들은 독일에 0-1로 아쉽게 패한 뒤 여기저기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우리 선수들을 뜨거운 함성으로 격려했다. 팔짱을 낀 채 말 없이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에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당시 우리 대표팀 코칭스태프 2인자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박항서(59) 수석코치(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의 표정과 행동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모두가 실의에 빠져 있던 그때, 가장 바빴던 이가 박 코치였다. 우리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줬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코치 박항서’가 늘 해왔던, 그 역할 그대로였다.

그땐 아마 박 감독도 몰랐을 듯싶다. 우승 문앞까지 오고도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히지 못한 채 주저앉는 안타까운 징크스가 10여 년이나 이어질 줄은. 사령탑 데뷔 무대였던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우여곡절 끝에 동메달에 그쳤고, 전남 드래곤즈 감독 시절이던 2010년 FA컵에서 준우승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과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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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월드컵을 앞두고 훈련 중 박항서 코치(가운데)가 김병지에게서 볼을 뺏으려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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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월드컵을 앞두고 16강 진출을 기원한 박항서 당시 대표팀 수석코치의 사인.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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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 하루 전날인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박 감독이 “이번엔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건 단지 베트남을 정상에 올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이제껏 우승 문고리만 잡아보고 아쉽게 돌아서야만 했던 지도자 인생의 아픈 기억까지 함께 날려보내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함께 담겨 있었다.

전반 초반 선제골로 말레이시아에 1-0으로 앞서 또 한 번 우승 문턱에 발을 들이민 후반전, 박 감독은 좀처럼 자리에 앉지 못했다. 벤치 옆으로 살짝 물러나 연신 물을 들이키며 초조해했다. 경기 내내 초조한 듯, 어쩌면 살짝 화가난 듯 보이기도 했던 그의 얼굴은 종료 휘슬이 울리고서야 활짝 펴졌다.

흔히들 박항서 감독의 지도력을 ‘파파 리더십’으로 표현한다. 베트남 사령탑에 오른 이후 박 감독의 발자취는 다채로운 미담으로 가득하다. 부상 당한 선수를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고 이코노미석에 앉았다던지, 재활 트레이너의 일손이 바쁠 때 직접 나서서 선수들 발 마사지를 해준 이야기가 언론 보도로 널리 알려졌다. 경기에서 패한 직후 “너희들은 최선을 다 했다. 고개 숙이지 말라”는 박 감독의 격려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린 선수들의 사연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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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컵 우승 직후 하노이 시내로 몰려나와 기쁨을 나누는 베트남 축구팬들. 하노이=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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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박항서 매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달의 뒷면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들이 있다. 박 감독은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앞두고 거의 매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늦게까지 코칭스태프 회의를 진행한 이후에도 숙소에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정리한 자료를 보고 또 봤다. 선수들의 데이터에서 혹시나 간과한 부분이 없는지, 라인업과 전술 결정에 오류는 없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 스스로 “매일 밤 지쳐 쓰러져 잠에 들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런 노력은 신들린 듯한 용병술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결승 1차전에서 전격 선발 기용한 벤치멤버 응우옌 후이 훙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원정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홈 2차전에서는 1차전에서 결장한 응우옌 아인 득이 결승골(1-0)의 주인공이 됐다.

큰 틀에서 보면 이번 대회를 앞두고 ‘탄탄한 수비와 위력적인 역습’을 전술의 뼈대로 설정하고 한국 전지훈련 기간 중 이를 집중적으로 가다듬은 노력 또한 적중했다. 이번 대회 기간 중 보여준 족집게식 용병술에 대해 ‘하늘도 박항서 감독을 도왔다’고 표현한다면 박 감독이 서운해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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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컵 우승 직후 미딘국립경기장 인근에서 홍염을 터뜨리며 기뻐하는 베트남 팬들. 하노이=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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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축구대표팀이 지난 2008년 이후 스즈키컵을 탈환한 직후, 하노이 시내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경기가 열린 미딘 국립경기장 주변은 사람과 오토바이, 자동차가 뒤엉켜 ‘통제 불가’ 상태로 변했다. 온 사방에 금성홍기와 태극기가 나부꼈고,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홍염이 터져 장관을 연출했다. 자동차의 경우 10분 동안 100m 진행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수라장이었지만, 누구 하나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택시 잡기를 포기하고 우승 축하 인파에 휩쓸려 숙소 호텔로 향하는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박항서의 나라에서 왔냐”며 악수와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2002 한ㆍ일월드컵 당시 시청 앞 광장에서 응원을 마치고 정신 없이 동대문 앞까지 행진했던, 16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2002년을 닮은 ‘하노이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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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가운데)이 15일(한국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미딩 국립경기장에서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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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스즈키컵 정상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의 노력은 달콤한 보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베트남축구연맹(VFF)은 박항서호가 4강에 오른 직후 박 감독에게 4만3000달러(4900만원)의 보너스를 줬다. 베트남 가전업체 아산조는 1만3000달러(1500만원), 자동차업체 타코 그룹은 5만 달러(5700만원)를 약속한 상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직후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의 포상금 전체 규모는 511억동(25억5000만원)에 달했다. 정부기관과 기업체에서 앞다퉈 보너스를 전달한 덕분이다. 당시 돈 이외에도 아파트, 자동차, TV, 스마트폰, 시계, 고급 휴양지 무료 이용권, 종신보험증서 등 다양한 선물이 쏟아졌다. 베트남 사람들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이상으로 관심을 갖는 대회에서 10년 만에 정상에 오른 만큼, 포상금 규모는 23세 대표팀을 훨씬 능가할 전망이다.

‘임무 완수’를 선언한 박항서 감독은 또 다른 의미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노이에서. 중앙일보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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