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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Lee | 1922.12.28. ~ 2018.11.12. |
만화가 조수로 시작해 마블 코믹스 명예회장까지
여자에게 말 못 거는 왕따 소년을 ‘스파이더맨’으로
유색인종 영웅에 약점 있는 주인공 등 인간적 면모 심어
영화 40여편에 카메오…‘덕후’들에게 찾는 재미 선사
◆슈퍼히어로와 협객… 당신이 꿈꾼 영웅은
동서양 히어로물의 전설
스탠 리·진융을 추억하다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스파이더맨, 동방불패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동서양 대중을 휘어잡은 히어로물의 전설적인 창작자들이 최근 별세했다. 스탠 리와 진융(金庸)이다.
두 사람의 삶과 창작활동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각각 1922년(스탠 리), 1924년(진융) 태어나 96세, 9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2차대전을 경험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전후의 어수선한 시기를 통과했다. 냉전으로 인한 사고와 활동의 제약도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금기에 도전했고 이를 작품에 녹여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두 사람에 대해 “주류집단으로부터 억압받는 이들, 평범한 사람들을 영웅 혹은 협객으로 탄생시켰다는 점, 선악의 구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는다.
스탠 리는 전후 침체돼 있던 미국 만화계의 부흥을 이끌었다. 소수자와 약자, 결점이 있는 인물을 히어로로 내세웠고 악당에게도 수긍할 만한 스토리를 부여했다. 덕분에 우리는 비주류의 시선으로 주류의 세계를, 비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코믹북은 한때 하위문화(서브컬처)로 취급받았으나 그가 만들어낸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들은 50여년이 지난 뒤 스크린에서 대활약 중이다.
‘신필’이라 불렸던 진융은 자신을 좌절시켰던 시대의 모순을 무협소설 속에 담았다. 한때 사상개조를 강요받았던 그는 정파와 사파의 구분선을 모호하게 그렸다. 전형적인 ‘동양적 영웅’인 협객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녹여냈다. 각 시대의 문화, 철학을 아로새겨 ‘아속공상의 경지’(지식인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탠 리와 진융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는 방대해 드라마·영화·게임의 콘텐츠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영웅과 협객들을 돌아보며, 슈퍼히어로 스탠 리와 대협 진융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듀 스탠 리, 아듀 진융.
동서양 히어로물의 전설
스탠 리·진융을 추억하다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스파이더맨, 동방불패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동서양 대중을 휘어잡은 히어로물의 전설적인 창작자들이 최근 별세했다. 스탠 리와 진융(金庸)이다.
두 사람의 삶과 창작활동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각각 1922년(스탠 리), 1924년(진융) 태어나 96세, 9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2차대전을 경험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전후의 어수선한 시기를 통과했다. 냉전으로 인한 사고와 활동의 제약도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금기에 도전했고 이를 작품에 녹여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두 사람에 대해 “주류집단으로부터 억압받는 이들, 평범한 사람들을 영웅 혹은 협객으로 탄생시켰다는 점, 선악의 구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는다.
스탠 리는 전후 침체돼 있던 미국 만화계의 부흥을 이끌었다. 소수자와 약자, 결점이 있는 인물을 히어로로 내세웠고 악당에게도 수긍할 만한 스토리를 부여했다. 덕분에 우리는 비주류의 시선으로 주류의 세계를, 비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코믹북은 한때 하위문화(서브컬처)로 취급받았으나 그가 만들어낸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들은 50여년이 지난 뒤 스크린에서 대활약 중이다.
‘신필’이라 불렸던 진융은 자신을 좌절시켰던 시대의 모순을 무협소설 속에 담았다. 한때 사상개조를 강요받았던 그는 정파와 사파의 구분선을 모호하게 그렸다. 전형적인 ‘동양적 영웅’인 협객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녹여냈다. 각 시대의 문화, 철학을 아로새겨 ‘아속공상의 경지’(지식인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탠 리와 진융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는 방대해 드라마·영화·게임의 콘텐츠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영웅과 협객들을 돌아보며, 슈퍼히어로 스탠 리와 대협 진융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듀 스탠 리, 아듀 진융.
1962년 스탠 리가 ‘인크레더블 헐크’라는 히어로물의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상사가 물었다. “(연약한 헐크를 괴물로 변하게 한) 감마선 폭탄이 뭐지?” 스탠 리는 답했다. “나도 몰라요. 그냥 멋있잖아요.”
11월12일 스탠 리(본명 스탠리 마틴 리버)가 별세했을 때 미 항공우주국(NASA), 테슬라의 엔론 머스크는 소셜미디어(SNS)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리는 과학적 지식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과학적 상상력을 불어넣는 데는 천재적이었다.
스탠 리는 고교 졸업 후 17세에 마블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에 들어가 만화가들의 조수로 일하다가, 우연히 ‘캡틴 아메리카’의 스토리 일부를 쓰면서 만화 각본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판타스틱 포, 헐크, 스파이더맨, 엑스맨을 내놓으며 일약 스타 작가가 됐다. 마블 편집장, 마블 엔터테인먼트 최고경영자를 거친 리는 이후 마블의 상징이 됐다.
스탠 리가 작가로 일한 1960년대에 만들어낸 히어로들이 50여년 뒤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다. 스탠 리의 생각이 담겼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영웅들을 소개한다.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 회고록>(영진닷컴), <스탠 리의 코믹스 기법>(비즈앤비즈), <스파이더맨 백과사전>(아르누보), <마블 백과사전>(시공사)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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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가 된 ‘왕따 소년’
여자들에게 말도 못 걸고, 겁쟁이라고 놀림 받고, 고소공포증 때문에 도서관 서가 맨 위의 책을 꺼내기도 힘들어한다. 그의 이름은 피터 파커. 훗날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되는 소년이다.
스파이더맨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판타스틱 포’ ‘인크레더블 헐크’로 ‘대박’을 터뜨린 스탠 리는 1962년 스파이더맨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거미인간, 10대 ‘루저’ 주인공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크립톤 행성에서 온 외계인(슈퍼맨), 최첨단 장비를 가진 억만장자(배트맨)가 주름잡은 코믹북 히어로 시장에서 ‘고교생 히어로’는 낯설었다.
당시 마블의 발행인 마틴 굿맨은 스탠 리의 구상에 대해 “사람들은 거미를 싫어한다. 슈퍼히어로가 10대라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고 반응했다. 스탠 리는 굴하지 않았다. 폐간을 앞둔 ‘어메이징 판타지’ 15호에 스파이더맨을 억지로 게재했다. 세상에 나온 스파이더맨은 곧바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스파이더맨이 처음 등장하는 ‘어메이징 판타지’ 15호의 당시 가격은 12센트였지만 2011년 경매에서 11만달러(약 12억여원)에 판매됐다.
스파이더맨의 최대 난관은 히어로와 평범한 시민의 삶을 모두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피터는 오랜 연인 메리 제인과 사랑을 이어가지만, 스파이더맨의 적들은 메리 제인을 위협한다. 피터는 죽은 이모를 살리는 대신, 메리 제인과 결혼한 기억을 지우기로 악당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는다. 피터와 메리 제인의 결혼은 그렇게 끝난다.
스탠 리는 생전에 수많은 히어로를 만들었지만, 늘 “스파이더맨을 만든 분 맞죠”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리는 스파이더맨이 가장 사랑받은 이유가 “슈퍼 히어로 중 가장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며 “(스파이더맨은) 늘 돈, 개인적 문제로 시달리고 세상은 딱히 그의 행동을 환영해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도 자신만의 ‘전장’에서 나름의 ‘히어로’가 되어 전투를 벌이지만 오히려 오해를 살 때가 많다. 스파이더맨은 우리 안의 ‘연약한 히어로’를 끄집어내는 ‘친구’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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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리가 만화 각본가로 일하던 1960년대 마블이 탄생시킨 히어로들. 위쪽부터 헐크, 스파이더맨과 그의 연인 메리 제인, ‘엑스맨’의 자비에르 교수와 매그니토, 아이언맨, 블랙팬서. 이들 히어로는 50여년이 지나 스크린을 주름잡고 있다. |
■ “우리 모두 조금씩은 뮤턴트”
21세기에 영화화돼 사랑받은 <엑스맨> 역시 55년 전에 탄생한 ‘장수 히어로’다. 스파이더맨을 내놓은 이듬해인 1963년, 스탠 리는 뮤턴트(돌연변이)를 내세운 히어로물을 생각했다.
1960년대는 마틴 루서 킹이 주도하는 민권운동이 미국 사회를 휩쓸던 시기였다. 스탠 리도 그 영향을 받았다. 이번에도 엑스맨 아이디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마블 발행인 마틴 굿맨에게 스탠 리는 말했다. “온 세상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은 자신이 뮤턴트라고 느낀다고요.”
‘엑스맨’의 수장인 자비에르 교수는 뮤턴트의 슈퍼휴먼 능력을 선한 방향으로 발휘해 인간과 공존하길 꿈꾼다. 그의 숙적 매그니토는 뮤턴트를 탄압하는 인간을 믿지 않고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연관해 자비에르를 마틴 루서 킹, 매그니토를 맬컴X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매그니토는 악당이지만, 인간에 대한 그의 증오심에는 개연성이 있다. 매그니토는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는 과정을 목격했다. 인간들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벌인 무도한 짓이었다.
올해 개봉해 흥행한 영화 <블랙 팬서>는 아예 유색인종 히어로를 등장시킨다. 스탠 리는 1966년 블랙 팬서를 처음 선보였다. 흑인들이 사는 가상국가 와칸다는 백인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 블랙 팬서는 발달한 기술과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조국 와칸다를 지킨다. 스탠 리는 소수자 문제를 히어로물에 투영한 최초의 만화창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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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운동과 군수업자 히어로
미국의 1960년대는 거센 반전운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 존슨 정부가 1964년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됐다. 젊은이들은 불의한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의 구호를 외쳤다. 이때 스탠 리는 시류를 거스르는 엉뚱한 발상을 했다. 히어로를 만들되, 젊은이들이 참아줄 수 없는 직업을 갖게 한다면? 그렇게 탄생한 히어로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경영하는 군수업자이자 플레이보이다. 그러나 재치와 유머가 넘쳐 미워하기 힘든 인물이다.
스탠 리는 모든 히어로들에게 ‘약점’과 ‘어두운 과거’를 부여해, 인간적 면모를 갖게 했다. 공학자인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만든 무기를 시험하다가 심장에 파편이 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이때 그는 북베트남을 위한 무기를 개발하면 파편을 제거해주겠다는 게릴라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동료인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와 강철슈트를 만들어 자신의 심장을 보호한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악당을 제압하는 슈퍼 히어로의 면모도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아이언맨을 처음으로 내세운 ‘테일즈 오브 서스펜스’ 39호에는 이런 문구가 덧붙여져 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판타스틱 포, 스파이더맨, 토르를 만든 재능 많은 불펜진이 제작.’ 시간이 흐른 뒤 아이언맨은 전쟁의 해악을 명확하게 느껴 군수업을 그만둔다. 반전운동의 한복판에 태어난 군수업자 아이언맨 캐릭터는 스탠 리가 이념을 유행처럼 소비하는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 스탠 리의 모험
스탠 리는 “스파이더맨을 만든 사람”이자, 침체기에 있던 미국 코믹북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작가였고, 앞날을 내다보는 혁신가였다. 2차 대전을 전후해, 히어로물은 선악구도가 명백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코믹북의 ‘골든에이지’였다. 하지만 1950년대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휘몰아치면서 코믹북 역시 마녀사냥을 당했다. 한 정신의학자는 코믹북이 청소년 비행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조 매카시 상원의원은 코믹북을 대상으로 한 TV중계 청문회까지 열었다. 비행 청소년들이 코믹북을 읽으니 코믹북이 비행의 원인이라는 매카시의 주장에 스탠 리는 이렇게 말했다. “비행 청소년이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니까 초콜릿 케이크도 청소년 비행을 조장하겠군요.”
스탠 리는 검열에도 저항했다. 정부의 압박에 미국 출판계는 1954년 자체 검열위원회를 만든다. 검열을 통과하면 CCA(COMICS CODE AUTHORITY) 인증마크를 부착하게 했다. 스탠 리는 교육부로부터 “마약을 지양하는 공익적 내용을 써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스탠 리는 마약에 찌들어 지붕에서 뛰어내리려는 남자를 스파이더맨이 구해주는 ‘공익적’ 내용을 그렸다. 하지만 검열위원회는 마약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검열기준에 어긋난다면서 인증마크를 내주지 않았다. 스탠 리와 동료 마틴 굿맨은 내용을 수정하지 않은 채 인증 없이 책을 출간했다. 당시 타임지는 ‘만화 잡지가 마약소재 검열을 어겼다’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CCA 인증 관행은 점차 힘을 잃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 스탠 리는 자신의 짧은 칼럼(스탠의 비누박스)에 이렇게 썼다. “편견과 인종주의는 오늘날의 세계를 괴롭히는 치명적 질병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광선총이나 펀치로 슈퍼빌런들을 막듯 이겨낼 수 없다. 그들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그들이 얼마나 서서히 퍼져가는 악덕인지, 세상에 드러내는 것뿐이다.” 허핑턴 포스트의 프레데릭 조지프는 스탠 리의 부음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인종, 피부색, 젠더, 그밖의 다른 차이들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우주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곳은 도덕성과 인간적(혹은 비인간적) 품위에 따라 대우받는 세계였다.” 신경외과 의사 최원서씨는 어린 시절 코믹북에 빠진 인연으로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씨네플레이’에 코믹북 히어로들에 관한 글을 연재 중인 그는 “마블은 연약한 헐크, 시각장애인 데어데블같이 핸디캡이 있는 인물을 히어로로 내세웠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마블의 히어로들은 2008년 영화 <아이언맨>의 흥행을 기점으로 대활약 중이지만, 영화화 이전까지 스탠 리의 히어로들은 영미권 바깥 세계에선 ‘서브컬처’(하위문화)에 가까웠다. 아이언맨은 1960년대에 탄생했으니, 영화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정병욱 영화평론가는 “영화 관객들이 기존의 서사에 피로감을 느낄 때 제작자들은 방대한 스토리, 방대한 캐릭터를 생산해 온 히어로물 코믹북에 눈을 돌렸다”고 짚었다.
스탠 리는 코믹북의 감촉, 냄새, 커버, 추억을 사랑한 작가였지만, 영화 속 히어로들도 사랑했다. 그는 마블의 히어로가 나오는 40여편의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했다. 팬들에게 영화 속에서 그를 찾아보는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한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저는 사실 DC코믹스의 히어로(슈퍼맨, 배트맨 등을 배출한 경쟁사) 영화가 더 흥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나온다면 말이죠.”
그는 늘 긍정적이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때 사표를 품고 다녔지만 결국 버티고 버텨 자신만의 히어로를 내놓았고, 이를 통해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그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엑셀시오르’는 스탠 리에 따르면 그냥 평범하게 발음하면 안된다. ‘셀’에 힘을 주어야 한다. 만약 그의 유쾌한 기를 받고 싶다면 스탠 리의 캐치프레이즈 ‘엑셀시오르’를 외쳐보자. 엑‘셀’시오르! (높이, 더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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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 기자 kyung@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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