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J리그는 K리그뿐만 아니라 여타 아시아 리그를 앞서 나가고 있다. 사실 지난 수년간 동북아시아 프로축구리그에서 주목받던 리그는 중국 슈퍼리그였다. 연간 예산이 1000억원이 넘는 팀이 즐비하고, 유럽 최고의 스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슈퍼리그를 찾았다. 가시적인 성과도 없지 않았다. 광저우 에버그란데 같은 팀은 ACL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동북아에서의 대세는 단연 J리그이다. 지난 2년간 ACL 무대에서 정상을 차지한 리그 또한 J리그였다. 가시마 앤틀러스는 지난 10일 이란 페르세폴리스FC를 꺾고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2017시즌에는 우라와 레드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우리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은 적어도 경기력 면에서 K리그가 J리그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생각은 조금씩 그 논리적 근거가 약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보다 강하냐 혹은 약하냐는 질문에 대해 답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어느 리그가 더 우위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게추가 조금씩 기울고 있는 분위기이다.
각국 리그에는 여러 국적의 선수가 뛴다. 그게 프로축구이다. 축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개방적이고, 클럽이 좀 더 강한 팀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스페인 최강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는 아르헨티나 국적의 메시이고,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7번은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호날두이다.
지난 몇 년간 J리그가 경기력 측면에 있어서 좀 더 완성도 높아지고, 강해진 데에는 아이러니하게 한국 선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 골키퍼들의 활약이 큰 기여를 했다.
2018시즌 팀별로 정규리그를 1경기씩만 남겨 놓은 J리그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우승팀이 확정되었다. 가와사키는 리그 최다득점인 55점에 리그 유일의 20점대 실점을 하며, 완벽한 공수 밸런스로 J리그 2연패를 차지했다. 특히 가와사키는 33라운드 동안 26실점만 기록했는데, 마지막 라운드에서 3점 이상 실점하지 않는다면, J1리그에서 최근 15년간 가장 적은 실점을 한 팀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정성룡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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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의 수비 안정화의 중심에는 2016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의 정성룡이 있었다. 정성룡의 영입 이후 가와사키의 실점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정성룡 영입 전이었던 2015시즌 48실점이나 했던 것을 감안하며, 3시즌 만에 실점이 22점이나 줄어든 셈이다. 덕분에 가와사키는 시즌 창단 이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리그 우승을 2년 연속 이루는 쾌거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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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J1리그 골키퍼 포지션은 한국인 골키퍼들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성룡 외에도 권순태, 구성윤, 김진현, 김승규 등 5명이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J1리그 18개 팀 중 2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J1리그에는 한국인 골키퍼 외에도 다른 외국 국적의 골키퍼가 2명 더 있다). 이들 중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 골키퍼 또한 2명(김승규, 김진현)이나 있다.
J1리그에서 한국인 골키퍼들은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다. 올 시즌 ACL을 제패한 가시마 앤틀러스의 주전 골키퍼는 전북에서 활약한 바 있는 백전노장 권순태이다. 또 현재 1~4위 4개 팀 중 정성룡을 포함한 3개 팀의 주전 골키퍼가 한국선수이다. 마지막 라운드의 승패 결과에 따라서는 ACL에 진출하는 3위 내의 팀 모두가 한국인 골키퍼가 활약하는 팀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
데이터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인 골키퍼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정성룡은 실점과 실점률, 클린시트 횟수 및 비율에서 모두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물론 팀 수비에 대한 지표를 전적으로 골키퍼의 능력으로 치환하여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여러 지표에서 월등히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정성룡과 권순태는 클린시트 횟수와 비율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만큼 무실점 경기가 많다는 뜻이고, 팀 수비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골키퍼는 특수한 포지션이다. 피치에서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포지션이며, 그만큼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동안은 골키퍼 포지션에 언어가 다른 타 국적의 선수를 쓰는 것은 금기시해 왔다. 사실 J리그의 한국인 골키퍼 영입도 축구전문가 사이에서는 반신반의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험을 통해 J1리그는 강해졌고, 그 중심에 정성룡·권순태와 같은 현 국가대표가 아닌 한국인 골키퍼들이 있었다.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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