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 지운 손흥민, 총이냐 금이냐 운명의 한일전

한국 축구, 아시안게임 결승행

박항서 “손, 중앙에 나올지 몰랐다”

김학범과 포옹, 한국 승리 축하

손흥민 “금메달 정말 간절하다”

영국 언론 “병역혜택 한 판 남아”

베트남팬, 경기 전 “손, 군대 간다”

송중기 군복에 얼굴 합성 피켓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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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손흥민에게 허찔렸다” 토트넘 “축하해 소니”

29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스로인을 준비 중인 손흥민의 머리를 살짝 치고 있다. [연합뉴스]

총(銃)을 잡을 것인가, 금(金)을 손에 쥘 것인가. 이제 그의 앞길은 딱 한 경기, 결승전에서 정해지게 됐다. 이기면 금을 쥐지만, 지면 총을 잡아야 한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이 활짝 웃었다. 한국은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베트남을 3-1로 완파했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 전 김학범 감독과 박항서 감독이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공격수 손흥민은 1-0으로 앞선 전반 28분 날카로운 패스로 황의조(감바 오사카)의 추가 골을 어시스트하며 한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베트남 대표팀 박항서 감독은 “손흥민이 측면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중앙으로 나와 대비가 부족했다”며 한국의 승리를 축하했다.

잉글랜드 토트넘은 아시안게임 한국과 베트남 4강전이 끝나자마자 SNS를 통해 결승에 진출한 손흥민을 축하했다. [토트넘 트위터]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공식 트위터를 통해 “축하해 소니(손흥민 애칭)”란 글과 함께 태극문양의 배경에 손흥민이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주장 완장을 찬 사진을 함께 실었다. 가디언과 더 선 등 영국 언론들은 ‘손흥민이 군 면제까지 딱 1경기 남겨뒀다’고 속보로 전했다.

손흥민의 앞에는 이제 마지막 일곱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이 다음달 1일 오후 8시30분(한국시간)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승리할 경우 손흥민은 군 면제를 받는다. 일본은 준결승전에서 UAE를 1-0으로 꺾었다.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8강전에 이어 준결승까지 차례로 ‘도장깨기’에 성공한 손흥민은 이제 가장 중요한 한 경기만을 남겨둔 셈이다.

손흥민이 군복 입은 합성사진을 들고 도발한 베트남 팬. [뉴스1]

이날 경기에 앞서 베트남의 한 팬은 ‘손흥민은 한국 군대에 간다(Son Heung min joins Korean army)’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한국 대표팀을 도발했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군복을 입은 사진에 손흥민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또 일부 베트남 팬들은 손흥민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토트넘의 공식 소셜미디어를 찾아가 ‘베트남이 손흥민을 군대로 보내버리겠다’고 귀여운 도발을 했다.

전 세계 언론도 이번 대회 내내 손흥민의 병역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지난 11일 개막했지만, 토트넘은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손흥민을 약 한 달간 차출해주는 도박을 걸었기 때문이다.

27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남자 축구 8강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패널티킥을 성공시킨 황희찬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BBC는 “한국에서 병역의 의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약속이고, 높은 명성을 가진 사람일수록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축구 선수 박주영과 가수 MC몽 등이 병역 문제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손흥민이 금메달을 못 따면 화이트 하트레인(토트넘 홈구장)에 남을지, 집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1992년 생인 손흥민은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국 축구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손흥민은 당시 소속팀이었던 독일 레버쿠젠의 반대로 대표팀에서 뛰지 못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온두라스와의 8강전에서 0-1로 패한 뒤 좌절의 눈물을 흘렸다.

2016리우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열린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한국이 온두라스에 0-1로 석패했다. 손흥민이 그라운드에서 아쉬워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손흥민은 국외 거주로 만 27세까지만 입대가 연기된다. 그는 2008년 동북고를 중퇴해 4급 보충역(사회복무 요원) 소집대상자다. 국내 프로축구 K리그 군경팀 상주 상무(국군체육부대)와 아산 무궁화(경찰청)에서 뛰려면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해 현역 입영대상자 자격을 얻어야 한다. 더구나 상무와 무궁화에는 27세까지만 지원할 수 있는 데다 이마저도 K리그 소속으로 6개월 이상 뛰어야 가능하다. 사실상 길이 막힌 셈이다.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한국의 규정은 우스꽝스럽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인 손흥민이 사회복무요원으로 2년간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손흥민으로선 남은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딴 뒤 정정당당하게 군 면제를 받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유럽 무대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하면서 국위선양을 할 수도 있다.

29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에서 전반전 황의조의 득점 뒤 손흥민이 점프하며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출전해 주장을 맡았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약체 말레이시아에 1-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헌신적인 리더’ 손흥민의 리더십 덕분에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손흥민은 또 지난 23일 이란과의 16강전 후반 김진야가 무릎 통증을 호소하자 ＂내가 수비로 내려갈게”라고 말한 뒤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황희찬의 페널티킥 슈팅 순간, 차마 보지 못한 손흥민 [연합뉴스]

2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연장 후반 황희찬(잘츠부르크)이 페널티킥을 찰 때 뒤돌아서 눈을 가린 모습은 손흥민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손흥민은 아시안게임에서만큼은 해결사가 아니라 살림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김학범 감독도 ＂손흥민은 정신적 지주이자 팀을 이끄는 중요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손흥민은 “뒤도 없는 상황이다. 이제까지 슬픈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이제 정말 대한민국에 기쁜 뉴스를 전해드리고 싶다. 여기까지 와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바보다. 정말 간절하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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