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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이재후의 온 에어]이근호 해설위원, 지금 후배들 만나러 니즈니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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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재후 KBS 아나운서와 이근호 KBS 월드컵 해설위원. 제공 | 이재후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러시아 월드컵 KBS 중계방송단은 수도 모스크바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주택에 묵고 있습니다. 2층에 5명이 살고, 1층에 2명이 삽니다. 다리 부상으로 재활 중인 이근호 해설위원은 계단이 불편해서 1층에 방을 잡았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재활 훈련을 합니다. 한 번 할 때마다 온 몸은 땀으로 흥건해지고,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며, 거친 숨을 끊임없이 토해냅니다. 보고 있으면 저 같은 사람들은 선수들에 대한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15일엔 모로코-이란전을 중계했습니다. ‘샤우팅의 신’ 한준희 해설위원과 이근호 위원, 저까지 3인 방송을 했는데, 이란의 ‘늪 축구’에 모로코는 물론 중계를 하는 우리도 당할 뻔 했습니다. 축구 경기가 수비 위주로, 한 팀이 계속해서 상대의 흐름과 맥을 끊으면서 진행됩니다. 게다가 파울도 많이 나오는 식으로 흐르면 방송도 리듬이 끊어지고 나름의 박자를 타지 못해 캐스터와 해설자, 시청자가 모두 지루해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때 채널은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이란-모로코전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중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참여한 경기여서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100을 기준으로 박진감 10의 경기를, 박진감 80~90 정도의 중계 방송으로 바꿔놓지 않았나 자부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해준 이가 바로 이근호 위원이었습니다. 한준희 위원은 중계 경험도 많고 축구 내·외적인 지식이 많기 때문에 그런 ‘늪 축구’ 방송에서 살아 나오는 방법을 아니까 걱정이 없습니다. 이근호 위원은 그야말로 ‘초짜’입니다. ‘이란 축구에 이근호도 말릴 수 있겠구나’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기우였습니다.

이근호 위원은 스스로 “타고남이 아니라 노력”으로 지금의 ‘선수’ 이근호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볼 때 방송은 타고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자신이 들어가야할 때와 끊어야할 때, 이어야 할 때와 넘겨야 할 때, 진지할 때와 재치있어야할 때, 뛰어야할 때와 걸어야할 때를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감각적으로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 능력으로 이근호는 이란의 ‘늪’을 방송을 통해 메워버렸습니다.

제 직업이 아나운서입니다. 축구 캐스팅을 주로 하고 있으니 축구에 대한 일상적 자료를 모으는게 습관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이근호 파일’의 첫 줄은 김신욱의 이근호 관련 인터뷰입니다. “이근호를 리오넬 메시와도 바꾸지 않겠다.” 두 선수가 울산에서 같이 뛰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합작할 때 인터뷰입니다. 선수 이근호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가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그 인터뷰에 빗대서 얘기하면 저는 “이근호를 유재석과도 바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유재석씨에게 의문의 1패를 드려 죄송합니다).

집 떠나면 라면 먹고 싶은 것은 선수와 비선수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이근호 위원과 라면 끓이기, 설거지를 걸고 경기 스코어 맞히기 내기를 합니다. 라면 하나 끓이고 설거지 한 번 하는게 뭐가 대수라고, 슛 하나에 열광하며 튀어오르고, 절망하며 쓰러지고, 심판 판정에 격렬히 항의하는 이근호 위원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결국 내기에 진 제가 라면 끓이고 설거지를 합니다. 승리한 이근호 위원은 소파에 앉아있습니다. 앉아서 텔레비전을 녹여버릴 듯한 눈빛으로 경기를 들여다 봅니다. 그런 이근호를 힐끗 보다가 갑자기 목 언저리가 시큰해집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좋아하는 월드컵, 부상으로 나가지 못한 저 ‘선수 이근호’의 마음 자리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이근호는 러시아 월드컵에 정말, 간절히, 기필코, 끝끝내, 꼭 오고 싶었고, 결국 왔습니다만, 선수로서 오지는 못했습니다. 이근호 위원은 지금 제 옆에서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첫 경기가 열리는 니즈니노브고로드로 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자신은 방송용 정장을 입습니다. 얼마 전까지 대표팀에서 함께 뛰던 동료 선수들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만날 겁니다. 이근호 위원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근호는 무섭습니다. 경기를 뛰는게 아니라, 그 경기를 해설하기 위해 러시아에 왔지만 해설자로서의 준비 또한 완벽하게 해 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스타니까 해설이나 한번 해 볼까’하는 마음으로 온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의 방송 준비용 노트엔 여백이 거의 없습니다. 확신합니다. 이런 준비와 성실함이라면 ‘선수 이근호’의 부상과 재활기간도 생각보다 짧을 것이라고, 그리고 선수 생활도 아주 길 것이라고. 해설위원과 선수를 넘어 인간 이근호는 참 매력적입니다.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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