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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매킬로이 +10, 스피스 +8...US오픈은 왜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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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허리 페어웨이, 콘크리트 그린

"파(PAR) 가치 지켜야" 변별력 높여

프로에 맞서는 골프장 주인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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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매킬로이 [USA TODAY=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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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선수들이 다들 얼굴을 찡그리고 들어왔다.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명문 클럽 시네콕힐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제 118회 US오픈 1라운드에서다. 로리 매킬로이는 10오버파 80타를 쳤다. 함께 경기한 조던 스피스는 8오버파, 필 미켈슨은 7오버파였다. 세 선수의 합은 25오버파다.

랭킹 5위 존 람(+8), 8위 제이슨 데이(+9) 등도 망신을 당했다. 80타를 넘긴 선수는 27명이었다. 22오버파를 친 스콧 그레고리가 꼴등이었는데 그는 “나는 92타를 칠 정도로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고 실제 그렇다. 골프장이 그만큼 어렵다.

대회가 열리기 전 선수들은 코스에 찬사를 보냈다. 미켈슨은 “내가 본 코스 셋업 중 최고다. 운이 아니라 실력만으로 테스트하는 골프코스”라고 말했다. 매킬로이도 “이 골프장을 좋아한다. 이런 곳에서 경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1라운드가 끝난 후엔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US오픈에 나온 선수들은 경기 후 “선수 망신 주기 위해 만든 대회”라고 짜증을 내곤 한다.

US오픈은 골프 대회 중 가장 어렵다. US오픈 대회장의 전장은 길고, 페어웨이는 좁다. 그린은 시멘트처럼 단단하고 러프는 질기다. 21세기 들어 US오픈은 전장 7500야드 정도의 코스에서 열린다. 그 것도 파 72가 아니라 파 71 혹은 70이다. 지난해 대회 1라운드 전장은 7845야드였다.

전장이 짧은 홀에서 페어웨이는 극단적으로 좁아지기도 한다. US오픈의 러프는 다른 대회 러프와 확실히 구별될 정도로 길고 질기기 때문에 ‘US오픈 러프’라는 말이 따로 있다. 시네콕힐스는 US오픈을 개최하기 위해 지난해 페어웨이 양쪽 잔디를 들어내고 무릎까지 올라 오는 페스큐를 심었다. 들어가면 공을 찾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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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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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그린은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만큼 빠르지는 않다. 그러나 단단하다. 높이 띄우고 확실하게 스핀을 걸지 못한 공은 튀어나가게 만든다. 그린에 공을 못 세워 그린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는 최고 선수의 모습은 US오픈의 일상이다.

이를 위해 조직위는 잔디가 말라 죽을 정도로 물을 주지 않고 깎고 짓누른다. US오픈을 치른 골프장은 이후 몇 개월간 죽은 잔디를 살리기 위해 고생한다.

할 수만 있다면 US오픈은 그린 스피드도 오거스타 이상으로 했을 것이다. 최경주는 “마스터스에서는 소나무 숲과 갤러리들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공이 그린에 멈춰서 있지만 다른 대회에서는 그렇게 빠르게 했다가는 공이 굴러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올해 시네콕힐스에서도 바람이 예상되자 그린속도를 늦췄다. 그래도 선수들은 고생했다.

대회는 여름에 연다. "가능한 많은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해가 가장 긴 시기"라는 명분은 좋지만 덥다. 그 더위에 살아남아 우승한 선수는 비인간적이라는 농담도 나온다. 2004년 시네콕힐스에서 열린 US오픈은 너무나 더웠다. 당시 우승자인 레티프 구센을 두고 언론은 “번개에 맞고도 살아난 선수라 그 악조건에서 우승했다”고 했다.

US오픈은 왜 그렇게 코스를 어렵게 만들까. 챔피언십의 목적은 가장 뛰어난 선수를 가리는 것이다. 진정한 최고를 가리려면 공정하며 변별력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변별력이 너무나 높아도 문제다. 코스가 지나치게 어려워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에 뛰어난 선수들도 줄줄이 무너지고, 오히려 의외의 선수가 우승하기도 한다.

너무 어렵게 만들려다 선을 넘는 일도 생긴다. 2004년 시네콕힐스에서 벌어진 대회 최종라운드 7번 홀에서의 일이다. 기울어진 그린이었는데 공이 서지 않았다. 잘 친 샷이 다 굴러 내려와 벙커에 빠졌다. 트리플보기가 속출하자 조직위는 경기 중 그린 속도를 줄이려 물을 뿌렸다. 이후 경기한 선수와 조건이 달라졌다.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USGA는 이에 아랑곳없이 어려운 대회를 전통으로 삼는다. 명분은 파(Par)의 가치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골프는 코스와 선수의 대결인데 코스가 유린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비도 규제하려 하고 있다.

파의 가치는 왜 유지되어야 하는가. 다른 메이저대회들은 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디 오픈은 스코어를 날씨에 맡긴다. 마스터스는 변별력을 높이려고는 하지만 신기록이 나와도 불쾌해하지는 않는다. PGA 챔피언십은 오히려 버디가 많이 나오는 버디 쇼를 바라는 듯하다.

US오픈을 여는 USGA는 미국 아마추어 골프 협회다. 1894년 시네콕힐스를 비롯한 아마추어 명문 골프클럽 5개가 창립멤버였다. USGA는 이듬 해 프로와 아마추어에게 모두 열려 있는 오픈(OPEN) 대회를 만들었다.

당시 아마추어는 골프의 정신을 지키는 고귀한 사람, 프로는 골프로 돈을 버는 천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골프코스를 프로선수들이 유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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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트로피.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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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콕힐스는 1896년 2회 US오픈을 열었다. 당시 전장이 5000야드에 불과해 80타를 깨는 프로들이 속출했다. 이를 용납할 수 없어 클럽은 2차례에 걸쳐 코스를 다시 만들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프로와 맞서기 위해 전장 450야드를 늘리고 페어웨이를 좁혀 러프를 기르는 등 단단히 무장했다.

현재 USGA가 프로 선수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요즘은 오히려 프로선수들이 귀족이다. 그러나 USGA의 유전자에는 코스가 프로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신념이 남아 있고 그것이 파를 지켜야 한다는 형태로 표현된다. 그러고 보면 선수들의 “US오픈은 우리 망신 주기 위해 만든 대회”라는 푸념도 일리가 있다.

뉴욕=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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