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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다치면 안되지만 ‘붕대 투혼’ 정신 만은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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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찢어진 이용, 붕대 감고 훈련
한국일보

1998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에서 머리가 찢어져 붕대를 감고도 과감하게 헤딩을 시도하는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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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서 ‘붕대 투혼’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는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장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와 3차전에서 피가 얼굴을 타고 유니폼까지 흘러내리는데도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가 “(붕대를 감아달라고) 빨리 빨리” 외치는 장면을 보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당시 직접 붕대를 감아줬던 이가 윤영설 축구협회 의무위원장이다. 20년이 지났지만 윤 위원장 기억은 생생하다.

“네덜란드와 2차전(0-5 패) 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바람에 선수단 분위기가 무거웠다. 벨기에와의 경기 전날 이임생이 방으로 찾아와 ‘선생님, 내일은 뛸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 그 전까지 이임생이 한 경기도 못 뛰어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걸 알고 있던 난 ‘내일 나가면 너의 모든 걸 던지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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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에서 이임생이 붕대를 감으며 빨리 경기장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장면. 오른쪽 아래는 유상철이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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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생은 벨기에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시작과 함께 최성용과 교체돼 들어갔고 후반 22분께 상대 공격수와 부딪혀 오른쪽 눈자위가 찢어졌다. 네덜란드전 대패로 한국의 16강 탈락은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지만 태극전사들은 1골이라도 넣어 외환위기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했다. 팀이 지고 있어 이임생도 1분 1초가 아까웠다. 그의 피와 땀은 헛되지 않았는지 한국은 후반 27분 유상철의 동점골에 힘입어 1-1로 비기며 대회 첫 승점을 땄다.

윤 위원장은 “이임생이 진짜 몸이 부서져라 뛰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다음 날 이임생이 내 격려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고 고마워하며 선수 전원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선물했다. 팀 닥터로 수많은 경기를 봤지만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한 마디 덧붙였다.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악’으로 ‘깡’으로 뛰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팬들이 우리 축구대표팀에 바라는 게 바로 20년 전 모습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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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수비수이자 최고참 이용이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의 이마에 꿰맨 상처를 덮은 반창고가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류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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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의 최고참 이용(32ㆍ전북)은 러시아로 넘어오기 전날인 지난 11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네갈과 비공개 평가전에서 전반에 상대 팔꿈치에 가격 당했다. 이마가 7cm나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 이중으로 꿰매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하지만 이용은 언제 다쳤다는 듯 붕대를 감은 채 정상 훈련을 소화 중이다. 그는 14일 훈련 전 인터뷰에서 “상처 부위는 다 아물었다. 스웨덴전에 출전하면 부상 때문에 헤딩 경합에서 주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월드컵 첫 경기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대표팀은 여전히 모진 비난과 조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이 20년 전 같은 투혼을 발휘한다면 팬들도 승패와 관계없이 박수를 쳐주지 않을까.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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