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길, 번뇌는 집착에서 온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어느 순간 눈과 귀에 들어온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감각의 총체라고도 했다. 상황이 바뀌면, ‘나’도 바뀐다. 집착하지 않았던 것에 집착하게 되고, 어느 순간 번뇌가 돼 괴롭힌다. 야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 박한이는 한결같은 타자다. 2001년 데뷔 첫 해 117안타를 때렸다.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100개 넘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16년을 이어온 기록이 지난해 깨졌다. 68경기밖에 못 나왔고, 안타 숫자는 31개에 그쳤다. 집착이 번뇌를 만들었다. 박한이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이전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박한이는 “옛날에는 배트 스피드가 느리다는 말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큰 문제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이 되니까 그 말이 자꾸만 귀에 들렸다”고 했다. 좋은 타격은 배트 스피드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타이밍만 맞으면 타구는 뻗는다. ‘배트 스피드’가 집착으로 변했다. 박한이는 “배트 스피드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힘을 줘서 스윙을 하고 있었다. 힘만 주면, 방망이 헤드는 더 느리게 돈다”고 했다. 집착이 번뇌가 됐다.
NC 박민우는 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2루수다. 지난해에는 타율이 3할6푼3리나 됐다. 타격 3위였다. 도루를 50개(2014년)나 한 적도 있다. 빠른 발로 내야 타구도 손쉽게 안타로 만들었다.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까다로운 타자였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집착이 번뇌로 이어졌다. 올시즌 박민우의 타율은 1할9푼밖에 되지 않는다. 한없는 부진에 빠지면서 지난달 29일 2군에 내려갔다가 지난 12일 1군에 복귀했다. 복귀 첫 경기였던 13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NC 김경문 감독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8월 열리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합류 여부가 집착과 번뇌로 이어졌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표팀 합류가 가능할 텐데, 더 잘하려는 욕심이 슬럼프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은 원인이 되는 집착을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박한이는 올시즌 두 차례 2군에 다녀왔다. “이제 와서 배트 스피드를 강제로 높일 수는 없다. 메커닉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내가 갖고 있던 타격 타이밍을 되찾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박한이 스윙의 장점은 정확한 타이밍으로 때려 좌익수쪽 타구를 만드는 데 있다. 나쁜 공도 끝까지 따라가 맞혀내는 콘택트 능력을 갖췄다. 배트 스피드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원래의 야구가 돌아왔다.
박한이는 13일 대구 KIA전 3회 좌중간 2타점 2루타를 때렸다. KIA 선발 헥터 노에시의 낮은 볼을 정확하게 때려 좌중간을 갈랐다. 박한이는 2군에서 돌아온 4일 이후 7경기에서 타율이 무려 5할1푼9리다. 7경기에서 타점 8개를 쌓았다. 박민우의 길도 다르지 않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집착을 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8월의 일을 미리 조급해하지 않고,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박민우는 잘 알려진 대로, 잘 안 풀릴 때 여기저기에 ‘卍’자를 그리는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하다.
야구는 번뇌의 종목이다. 공 하나, 타석 하나, 경기 하나가 집착을 낳는다. 내려놓는 것이 야구의 길이다. 그래서 야구공은 108개의 실밥으로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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