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전 FC서울 감독.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나처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 달 1일 인천과 원정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 후배 몇몇 선수들이 심한 비난에 직면했다는 취재진 얘기를 듣자 19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을 떠올리며 “내가 잘 이겨낸 것처럼 후배들도 잘 해냈으면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볼리비아전은 ‘축구인’ 황선홍이 맞은 첫 시련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활성화됐다면 더 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였을 것이다. 황 감독은 바로 다음 독일전에서 만회골을 넣으며 헤딩 세리머니로 울분을 토해냈다. 4년 뒤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차범근 감독과 벨기에전 출전을 논의하던 중 차 감독의 낙마 소식을 듣는 충격도 겪었으나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선제 결승골로 화려하게 날고 선수 생활을 해피 엔딩으로 마감했다. 월드컵 때마다 울고 웃었던 스토리는 공격수 황선홍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황 감독이 지도자 생활 10주년을 맞아 첫 시련에 직면했다. 2008년 부산 지휘봉을 잡아 2년 뒤 FA컵 준우승으로 처음 날아오른 그는 친정팀 포항으로 이동, 2012년 FA컵 우승에 이어 2013년엔 사상 처음으로 1부리그와 FA컵을 동반 제패(더블)해 한국프로축구사에 큰 획을 그렸다. 그리고 2016년 여름 FC서울로 온 뒤 전북을 최종전에서 따돌리고 서울의 기적 같은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다. 1부리그 우승 때마다 마지막 경기에서 짜릿한 승리로 순위표 맨 위를 가로챘던 그의 리더십, 제로톱 전술을 응용한 기술 축구 ‘스틸타카’ 등은 ‘스타 플레이어는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명제를 보기 좋게 깨트린 K리그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목표로 부산→포항→서울을 한 단계씩 차례차례 밟아나가는 그의 발걸음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인생에 탄탄대로는 있을 수 없고 서울에서 자신의 축구를 본격적으로 펼쳐보이겠다는 그의 다짐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막을 내렸다. 선수 시절 볼리비아전이 큰 고비였다면, 지도자 생활의 첫 고비가 닥친 셈이다. 그는 “내가 부족한 탓”이라는 말과 함께 총총히 K리그 무대를 떠났다. 그의 퇴장이 ‘굿바이’는 아닐 것이다. 황 감독은 “미래에 어떤 위치에 있든 그 동안의 경험을 도약의 계기로 삼아 더 좋은 축구인 황선홍이 되겠다”며 재도약을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2015년 포항을 떠날 때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작별인사 ‘소 롱(So long)’을 외쳤다. 한 단계씩 나아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으로도 볼 수 있다. 실패 없는 지도자는 거의 없다. 어제의 영광이 오늘의 악몽으로 변하는 게 스포츠의 생리다. 축구의 생리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맛 본 아쉬움이 ‘축구인 황선홍’의 더 큰 날개짓을 위한 자양분이 되길 기대한다. 그가 밝힌 ‘소 롱’의 약속을 기다리겠다. 축구 인생에 굴곡이 있어 황선홍이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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