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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성소수자 옹호하냐는 항의 집요하지만 흔들려선 안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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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들이 말하는, 한국에서 성소수자 방송을 만든다는 것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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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EBS <까칠남녀>가 조기 종영했다. 직장 내 성희롱, 공교육의 페미니즘 교육 필요성에 대해 말하며 주목받던 방송이 위기를 맞은 것은 ‘성소수자 특집’을 방송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2부작으로 성소수자들이 직접 출연한 방송이 나간 후 일부 종교단체 등에서 큰 항의를 받았다. 이후 제작진의 패널 은하선에 대한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와 이에 반대한 출연자들의 보이콧 사태까지 겹치며, 19일 종영 예정이던 방송은 지난 5일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일련의 사태는 한국 방송계에서 ‘성소수자’를 다루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방송을 제작한 적이 있는 현직 PD 세 명과 각각 인터뷰했다. 이들은 프로그램 방영 중단 요구는 물론 방송사 앞 시위대를 보며 느꼈던 점 등까지 솔직히 털어놨다.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각 방송사의 PD들을 통해서도 성소수자를 담아내는 것에 대한 방송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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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은 인권의 문제

PD들은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방송은 기획 과정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ㄱ = 관련 기획을 얘기했을 때, 대부분 좋게 평가했어요. 특히 젊은 PD들은 대개 공감하는 분위기였죠. 문제는 방송을 편성하는 윗선을 설득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이게 시청률이 나오겠어?”라며 돌려서 ‘안된다’는 걸 표현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기획’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편성이 됐죠.

ㄴ = 처음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응당 다뤄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다들 이견 없이 넘어갔죠. 방송을 내보내면서 ‘아, 한국 사회가 이렇게 변했구나’라는 생각에 어떤 면에선 희열을 느끼기도 했어요.

ㄷ = 사실 성소수자라는 포인트에 집중했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외면받는 여성, 어린이 등 다양한 소수자에 대해 다루려고 했어요.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 혐오에 반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답이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방송 이후에 일어났다. 일부 시청자는 프로그램에 ‘동성애 옹호·미화 방송’이란 딱지를 붙였다. 종교단체들은 방송국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ㄴ =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는 분들이 굉장히 끈질기게 대응했어요. 회사나 관련 기관에 민원을 넣고 시위도 계속했죠. 사실 방송을 못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ㄱ = 회사 앞에서 시위가 계속되니까 부담이 되긴 했어요. 하지만, ‘괜한 방송을 만들어서 회사에 누를 끼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안 하기로 했어요. 인권을 얘기한 것은 잘못이 아니니까요. 제가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ㄷ =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건 인권의 문제로 너무나 명확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이들은 대개 종교집단이었죠. 프로그램을 하면서 ‘교회를 설득하는 것은 정말 힘들구나’라는 생각은 했어요. 신앙과 연결돼 있는 문제라. 하지만, 한국 교회가 다 성소수자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일부 아주 보수적인 종교계가 특히 반발이 심할 뿐이죠. 이걸 전체의 시각이라고 생각해서 보편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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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비정상 가르는 사회가 문제

<까칠남녀>의 조기 종영을 보며 PD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방송사를 넘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ㄷ =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편견을 가진 기존의 권력이 공고하다는 생각을 해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많이 완화됐다지만, 방송만이 아니라 정치권이나 다양한 영역에서 지금도 이 문제가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잖아요.

ㄴ = 사회가 ‘정상성’이란 범주를 규정하고 이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모두를 비정상으로 대상화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는 종교적 신념도 담겨 있는 것 같고요.

ㄱ = 얼마 전에 동료 PD에게 성소수자 관련 아이템을 추천해줬는데, 자신은 ‘이걸 돌파할 자신이 없다’고 하며 받지를 못하더라고요. 아마 온전하게 자신이 이 문제를 이해하고 있느냐며 자문했던 것 같아요.

ㄴ = 소수자를 금기와 금지의 영역에 몰아넣는 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상황이지만 조금씩 밀고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다만, 만약 다음에 또 이런 소재를 다룬다면 그때는 방송사 자체의 대응 방안도 좀 더 세세하게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ㄱ =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싸움하고 인권운동 하시는 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게 드러나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감춰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섭외가 쉽지 않았어요다만, 방송이 나간 후 “너무 고맙다”는 말들을 전해올 때 큰 보람을 느꼈죠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는 직접적인 성소수자를 넘어서 그 가족이나 친구들이 겪은 사회적인 편견도 들어보고 싶네요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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