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빈 母, 스켈레톤 포기할 뻔 한 아들 마음 다잡아줘
- 클로이 김 父는 생업 접고 ‘매니저’ 자처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4년에 한 번 열리는 ‘꿈의 무대’에서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을 맺은 메달리스트 뒤에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지원했던 ‘더 대단한’ 부모가 있었다.
아시아선수 최초이자 역대 세 번째로 3개 대회 연속 포디움에 오른 ‘빙속여제’ 이상화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수년간 지원해주신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사진) 1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 선수 가족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이상화의 어머니 김인순 씨는 외환위기 이후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딸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왔다. 집 지하실에 옷 공장을 차리는 등 부업도 마다하지 않았고, 딸의 해외 전지훈련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기도 했다.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는 것도 김 씨의 몫이었다.
오빠 이상준 씨의 희생도 컸다. 이상화보다 먼저 스케이트를 신었던 이 씨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며 두 사람 모두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동생을 위해 스케이트를 포기했다. 이에 이상화는 고마움을 담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을 오빠에게 선물로 줬다.
한국 썰매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스켈레톤의 윤성빈의 뒤에도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여읜 윤성빈은 어머니 조영희 씨와 외할머니 손에 컸다. 어려운 형편에도 조 씨는 비인기 종목에 도전한 아들을 지난 6년간 묵묵히 지원했다. 스켈레톤에 막 입문한 윤성빈이 ‘썰매를 타는 게 힘들다’며 눈물을 흘릴 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스스로 결정해라. 너의 결정을 믿는다”며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도 어머니 조 씨였다.
(사진)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남자 스켈레톤 4차 경기에서 윤성빈의 어머니 조영희 씨와 여동생이 가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
윤성빈도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연 기자회견에서 “어머니가 뒤에서 묵묵히 지지해주고 기다리시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평창올림픽에서 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역사상 최연소 금메달을 딴 클로이 김도 “내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의 매니저를 자처한 아버지의 묵묵한 지원과 희생에 감사를 전했다.
클로이 김의 아버지 김종진 씨는 딸이 스노보드에서 두각을 드러내자 8살 때부터 친척이 살고 있는 스위스에 보내 훈련을 받게 했다. 김 씨도 딸과 함께 고된 스케줄을 소화했다. 매일같이 오전 4시에 일어나 산악열차를 타고 훈련지에 갔다가 오후 11시에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고, 미국에 돌아와서는 아예 생업을 접고 딸의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이 같은 사연은 최근 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수퍼볼’ 경기 날 광고로 방영돼 미 전역에 소개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서 깜짝 동메달을 획득한 김민석도 아버지가 매 경기마다 비디오를 들고 아들의 출전 영상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김민석의 아버지 김남수 씨는 “아들이 영상을 보는 걸 좋아한다. 늘 영상을 보며 복기하고 새로운 자세와 기술을 빠르게 습득한다”며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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