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하뉴, 66년만에 男피겨 2연패
두살때부터 천식, 체력 약했지만 약 먹고 마스크 써가며 훈련 소화
고향 지진땐 스케이트 신고 대피… 대피소서 지내며 모금 위해 공연
차준환, 한국 역대 최고 15위 "실수 아쉽지만 최선 다했다"
지난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메달리스트 기자회견. 이날 '피겨 황제'로 재등극한 하뉴 유즈루(24·일본)는 쉼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환히 웃었다.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미소년 외모의 하뉴는 표정은 밝았지만, 말에선 그동안 가슴에 담아둔 소회가 묻어났다. 감정이 벅찬 듯 이따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곰돌이 푸'가 비처럼 쏟아졌다 - 일본 하뉴 유즈루가 지난 16일 강릉 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쇼트 연기를 마치자 관중이 꽃 대신 하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곰돌이 푸’인형 등을 빙판에 던지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열린 프리 연기 점수를 합쳐 총점 317.85를 기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이틀 동안 하뉴에게 쏟아진 인형은 2000개가 넘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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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뉴는 이날 끝난 피겨 남자 싱글에서 총점 317.85를 기록하며 압도적 실력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2위 우노 쇼마(21·일본)보다 총점에서 10.95점 앞섰다. 올림픽 남자 피겨에서 2연속 우승은 미국의 딕 버튼(1948·1952) 이후 66년 만이다. 하뉴는 평창에서 일본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동시에 역대 동계올림픽 1000번째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이날 8번의 점프를 뛸 때마다 수천 명의 일본 팬을 포함한 1만2000여 명의 관중은 탄성을 질렀다. 연기를 마치자 하뉴가 좋아하는 '곰돌이 푸'를 비롯한 인형이 빙판에 비처럼 쏟아졌다. 조직위에 따르면, 전날 쇼트프로그램과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하뉴에게 쏟아진 인형은 2000개 이상(승합차 4대 분량)이다. 하뉴는 인형을 평창·강릉 지역에 기부할 예정이다.
하뉴의 올림픽 2연패(連覇)는 기적 같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난해 11월 점프 착지를 하다 넘어지며 오른 발목 인대를 다쳤다. 스스로 "'더는 스케이트를 못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두 달 가까이 스케이트를 벗었던 그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빙판을 탔고, 대회 2주 전에야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뉴는 3개월 만의 복귀전인 올림픽에서 진통제를 맞아가며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만화 주인공도 이 정도 가혹한 설정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가 응원한 덕분에 이곳에 섰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신문사인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은 그의 올림픽 2연패를 알리기 위해 올해 첫 호외(號外)를 발행했다.
하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인 동북부 센다이 출신이다.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할 당시 17세 하뉴는 센다이 빙상장에서 훈련하다 스케이트도 벗지 못한 채 대피했다고 한다. 전기·가스·수도가 끊겨 가족과 함께 대피소 신세를 진 소년은 동료 선수와 함께 지진 피해자를 위한 아이스쇼를 열어 모금 활동을 벌였다. 하뉴가 일본에서 단순히 '성공한 피겨 선수'가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함께 극복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는 "내 메달이 지진 피해자에게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뉴는 두 살 때부터 앓은 천식을 극복하며 지금의 자리에 섰다. 다른 선수에 비해 체력·지구력이 떨어지는 탓에 약물 치료를 병행했고, 연습 땐 꼭 마스크를 착용했다. 하뉴는 18일 열린 기자회견(평창 재팬 하우스)에서 피겨 역사상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꿈의 기술' 쿼드러플 악셀(공중에서 4바퀴 반 회전) 점프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두가 상상만 하던 기술을 현실 목표로 선언한 하뉴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 찼다.
우리나라 기대주 차준환(17)은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남자 피겨의 새 역사를 썼다. 차준환은 쇼트와 프리 합계 248.59점으로 전체 15위에 올랐다. 남자 싱글 15위는 1994 릴레함메르 대회 정성일(17위)을 넘어선 올림픽 한국 남자 피겨의 최고 성적이다. 이날 프리 경기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뛰며 엉덩방아를 찧은 차준환은 "쇼트 경기를 끝내고 다짐한 것처럼 넘어져도 벌떡 일어났다"며 "실수가 아쉬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차준환은 장점인 풍부한 표현력에 쿼드러플 점프를 추가 장착한다면, 2022 베이징 대회에선 더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점프 기계' 네이선 첸(19·미국)은 프리스케이팅에서 1위(215.08점)에 올랐지만, 쇼트프로그램 부진 여파로 최종 5위를 기록했다. 그는 프리에서 올림픽 최초로 쿼드러플을 6번 뛰었다.
[강릉=이순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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