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스켈레톤 金’ 윤성빈 母 조영희 씨
“끝이 아닌 시작이다” 윤성빈이 16일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남자 스켈레톤 4차 레이스 후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태극기를 든 채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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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들의 레이스를 차마 눈에 다 담지 못했다.
윤성빈(24·강원도청)이 금빛 질주를 펼친 16일. 설날 이른 아침 모두의 시선은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를 향했다. 하지만 어머니 조영희 씨(45)만은 경기장에서 눈을 돌렸다. 가슴으로 아들의 경기를 본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가 봤다.
이미 하루 전 1, 2차 레이스를 마치고 이날 3차 레이스 첫 주자로 나선 윤성빈이 몸을 풀기 시작한 오전 9시 20분. 출발선에서 아들의 등장을 기다리던 조 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경기를 보지 못하고 길가로 나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무 긴장돼서 못 보겠어요.”
슬라이딩센터는 16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출발부터 골인 지점까지 트랙 뒤편에 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조 씨는 경기를 보지 않고 골인 지점을 향해 30여 분을 말없이 걸었다.
조 씨가 5번 구간을 지날 때였다. 멀리서 썰매가 얼음판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고개를 돌렸지만 눈으로 잡을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건 채 1초도 되질 않았다. 우두커니 선 채 하염없이 아들의 뒷모습을 좇았다. 장내에 윤성빈이 3차 레이스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2012년 말 미국 파크시티 경기장에서 생애 첫 주행을 마친 윤성빈은 조 씨에게 전화했다. 겁먹은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고 했다. 짧은 한마디에도 조 씨는 아들의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이제 아들은 얼음판을 당당히 질주한다. 그런데 정작 조 씨는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걸 힘들어했다.
오전 11시 15분부터 마지막 4차 레이스가 시작됐다. 걸어서 골인 지점에 도착한 조 씨는 11시 10분경 자리에 앉았다. 손에 쥔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주변은 “윤성빈”을 외치는 관중들의 응원 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설날을 맞아 금메달을 축하하는 관중을 향해 윤성빈이 큰절을 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다른 선수들의 경기가 지나고 11시 52분경 드디어 윤성빈의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좌석 맞은편 대형 스크린에 4차 레이스를 준비하는 윤성빈의 모습이 잡혔다. 조 씨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윤성빈!” 주먹 쥔 손을 뻗으며 힘껏 아들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또 눈물이 터져버렸다. 곧이어 곁에 있던 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아들의 출발 모습도, 경기 모습도 쳐다보지 못했다. 몇 분 뒤 옆에 있던 딸이 조 씨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스크린을 보게 했다. “봐봐. 오빠가 1위잖아.” 조 씨의 얼굴엔 울음과 웃음이 교차했다. 조 씨는 길게 울먹였다.
“지금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데….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어요.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끓여주고 싶네요.” 조 씨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한편 가슴 졸였던 순간을 끝내고 승리의 감격을 맛본 어머니는 한결 편안하게 지난날을 떠올렸다. 큰일을 해낸 아들과 함께 17일 강원 용평리조트에서 ‘P&G 생큐맘 인터뷰’에 나선 조 씨는 “성빈이의 태몽으로 큰 바위에 호랑이가 올라가는 꿈을 꿨다. 친할아버지는 돼지꿈을 꾸셨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조 씨는 “지난해 어버이날 사진촬영을 했는데 당시 성빈이가 ‘어무이, 이제부터 효도할게요’라는 애정 어린 편지를 남겼다”며 “정이 많은 아이”라고 자랑했다.
윤성빈 “엄마, 사랑하고 감사해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이 17일 P&G의 생큐맘 캠페인 인터뷰에서 어머니 조영희 씨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G 제공 |
어머니에 따르면 윤성빈은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특별하게 투정을 부리지 않은 아이였다. 조 씨는 “운동을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성취감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조 씨는 또 “고등학생이던 성빈이가 스켈레톤을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지 않았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지만 아이가 도전하겠다고 하기에 100% 믿음을 갖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어머니가 뒤에서 묵묵히 지지하고 기다려 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쑥스러워서 말을 못했지만 사랑하고 감사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머니 앞에서 새로운 각오도 빼놓지 않았다. 윤성빈은 “잘하는 선수로 길게 가고 싶다. 지금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다시 한번 환한 미소가 번졌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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