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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2002년 서울처럼 붉은 물결 … ‘박항서 마법’에 빠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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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U-23 대회 연장 끝 준우승

아들뻘 선수들과 장난치고 논쟁

히딩크에게 배운 ‘원팀 노하우’ 활용

전세기 타고 베트남 정부 훈장

팬들 “아들 이름 항서로 짓겠다”

중앙일보

27일 중국 창저우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을 앞두고 단체 응원을 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 시내 마이딘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5만여 명의 축구팬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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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눈물 흘릴 때가 아니다. 응원해 준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할 때다.”

지난 27일 중국 장쑤성 창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끈 박항서(59·사진) 감독은 연장 접전 끝에 우즈베키스탄에 1-2로 져 실망한 제자들을 벤치로 불러모았다. 그러곤 한 명씩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울먹이던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힘을 얻어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자국 관중에게 인사했다. 박항서호는 베트남 축구 역사상 AFC 주관 대회 첫 결승 진출의 여운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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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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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강호 호주를 꺾고 8강에 오른 뒤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이라크와 8강전, 카타르와 4강전을 모두 승부차기 끝에 이겨 결승에 오르자 ‘바람’은 ‘태풍’이 됐다. 우즈베크와의 결승은 폭설 속에서 치러졌다. 베트남 선수 중에는 눈을 처음 본 이도 많았다. 그러나 그 생소한 환경에서 감독을 믿고 똘똘 뭉쳐 싸웠고 미끄러운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박항서호는 연장 후반까지 1-1로 팽팽하게 맞섰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실점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대회 기간 베트남은 ‘박항서 매직’에 푹 빠졌다. 경기가 열릴 때마다 베트남 전역에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규모 응원전이 펼쳐졌다. 박항서호의 결승전은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관심사였다. 온라인 중계 동시접속자 수는 14만 명에 달했다.

‘축구 변방’ 베트남의 성공 비결로 박 감독의 ‘서번트(servant·하인) 리더십’이 첫손에 꼽힌다. 박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임 직후부터 아들뻘인 선수들과 때로는 장난치고 때로는 논쟁도 벌이면서 끈끈한 관계를 만들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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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귀국 직후 하노이 시내에서 열린 카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한 베트남 축구대표팀. [베트남 포털 24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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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 새벽 5시에 기상, 6~7시쯤 출근하는 베트남 특유의 아침형 생활 패턴에 맞춰 훈련 일정을 당겼다. 점심 후 낮잠을 자는 문화도 인정했다.

한 번 정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 박 감독은 부임 직후 선수단에 식사 시간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령을 내렸는데, 깜빡 잊고 자신이 휴대전화를 가져온 날 흔쾌히 벌금을 냈다.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건 박 감독이 한국대표팀 수석코치로 참여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에게 배운 ‘원 팀(one team)’ 노하우의 핵심이다.

박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우승을 놓친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언론은 “박 감독이 마지막까지도 품위 있는 리더십을 선보였다”고 칭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쩐다이꽝 국가주석, 응우옌쑤언푹 총리 등 한국과 베트남의 지도자들도 잇따라 축전을 보내 격려했다. “아들이 생기면 이름을 ‘항서(hang seo)’로 짓겠다”는 현지 축구팬의 발언에 국내 네티즌은 “베트남식으로 ‘흐엉서(huong seo)’로 지으면 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박 감독은 “(대회 장소인) 중국으로 건너갈 때 일반 비행기를 탔는데 귀국길에는 전세기를 이용했다. 베트남 정부에서 훈장(3급 노동훈장)도 준다고 한다. 확 달라진 분위기가 아직은 영 어색하다”면서도 “한층 높아질 베트남 국민의 기대치를 채울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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