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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연예인 뒷담화, 이제 그만해도 된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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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에이미 논란’에 존폐 도마 오른 ‘풍문쇼’

‘아궁이’ ‘용감한 기자들’ ‘섹션TV…’등

수십년 전 가십 들춰 ‘TV판 찌라시’ 노릇

시청자 항의에 내부서 ‘자정’ 목소리도



한겨레

채널에이 <풍문으로 들었쇼>.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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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사생활을 까발리는 프로그램들이 또 말썽이다.

<풍문으로 들었쇼>(채널에이)는 19일 방송에서 방송인 에이미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뒷얘기를 내보내 논란이 됐다. 출연진은 “에이미가 인터뷰 뒤 기자한테 20만원을 빌렸다더라”거나, “구치소에서 만난 기자한테 얼굴 보정을 부탁했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얘기’를 쏟아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오전 에이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실이 아니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급기야 그의 자살시도설까지 돌며 ‘연예인 뒷담화’ 프로그램의 존폐 여부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소재 삼는 연예프로그램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3~4년 전부터 우후죽순 등장했는데, 기자나 연예인 등이 나와 ‘증권가 찌라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쏟아낸다. <풍문으로 들었쇼>와 엠비엔(MBN)의 <아궁이>는 이혼, 불륜 등 수십년도 지난 이야기까지 끄집어낸다. 이(E)채널의 <용감한 기자들>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톱가수 에이(A)씨가 지인의 사업 아이템을 가로챘다”거나 “걸그룹 멤버 두명이 한 스폰서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는 식의 내용으로 ‘티브이판 찌라시’를 방불케 한다. 최근에는 지상파까지 가세했다. <섹션 티브이 연예통신>(문화방송) 등에도 기자들이 나와 연예인의 사생활을 얘기한다.

왜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하는지 맥락도 없다. <풍문으로 들었쇼>는 12일 방송에서 한 남자 연예인의 아내가 외도를 해 떠들썩했던 17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춰냈다. ‘스타 배우자의 비밀’이란 주제로 ‘스타를 빛낸 배우자’를 다루면서 ‘사고뭉치 아내를 둔 남편’이라며 해당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아궁이>는 9일 방송에서 ‘비운의 가정사를 이겨낸 스타’를 얘기하면서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는, 아주 오래전에 활동한 가수의 이야기를 전했다. 연예인들은 “지인”이라면서 옆에서 본 그를 얘기하고, 기자들은 “내가 취재해보니”라며 익명 뒤에 숨는다. <아궁이>에 나온 가수 박일남은 “(해당 가수가) 나를 찾아와 ‘저는 그 사람밖에 없다’고 고백했다”는 둘만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까발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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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엔 <아궁이>.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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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처럼 속상한 마음을 표출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연예인들은 대부분 참는다. 이들 프로그램에 거론됐던 한 연예인의 매니저는 “오래전 이야기를 이제 와서 다시 끄집어내는 게 화가 나지만, 항의했다가 되레 일이 더 시끄러워질까봐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2, 3차 피해를 간과한다는 것이다. <아궁이>에서는 십년도 더 전에 공개연애했던 남녀 연예인의 만남부터 결별까지를 다뤘는데, 그 과정에서 소문에 불과한 결별 사유를 속속들이 공개했다. 여자 연예인은 이미 재혼해서 아이까지 뒀다. 한 남자 연예인은 “그런 방송을 보면서, 남편은 물론 아이들까지 상처받을 수도 있는데 제작진은 왜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며 “진행자와 패널들은 어떤 생각으로 출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궁이>에 출연했던 한 방송관계자는 “남의 사생활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왜 거기 나갔나 회의가 느껴져 다시 출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논란이 되면서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방송 관계자들은 ‘저비용 고효과’에서 찾는다. 몇명이 나와 남의 얘기를 하는 형식은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들 뿐 아니라 시청률도 좋다. <아궁이>와 <풍문으로 들었쇼> 시청률은 모두 2%대로, 비지상파에서는 높은 편이다. <용감한 기자들>은 이채널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아궁이>를 즐겨본다는 한 시청자는 “삼삼오오 모여 남의 뒷담화를 하는 것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어 귀가 솔깃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청률을 올리려고 남의 과거를 들춰내 흥밋거리로 삼는 것에, 이제는 시청자들도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를 잊고 현재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부로 거론해도 되는 거냐”는 등의 항의성 댓글이 늘었다. 내부적으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용감한 기자들>은 <풍문으로 들었쇼> ‘에이미 논란’이 일기 전 재정비를 결정했다. 이채널 쪽은 “의도와 다르게 연예인 가십이 부각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신뢰도를 높이려고 7월5일부터 연예 부분을 빼고 과학, 시사 등의 내용으로만 꾸려 방송한다”고 말했다. <풍문으로 들었쇼> 제작진은 “전·현직 기자들의 취재와 출연진의 경험담을 토대로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향후 내용 면에서 한 셀럽(셀러브리티)에 집중하기보다 연예계·문화계 전반의 트렌드와 문화를 다루는 쪽으로 일부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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