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할 때 카타르시스 느끼지만 '귓속말'은 정말 힘들었죠"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강정일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절대 악이 아니라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캐릭터라 끌렸어요. 평탄했던 삶에 이동준(이상윤 분)이라는 사람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하면서 삶이 흔들리게 되는 인물이죠. 입체적인 면을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최근 전국 평균 시청률(닐슨코리아) 20%를 돌파하며 종영한 SBS TV 월화극 '귓속말'에서 야망 넘치는 변호사 강정일을 연기해 호평받은 배우 권율(본명 권세인·35)은 이렇게 말했다.
강정일은 사랑했던 최수연(박세영 분)과 등을 돌리면서까지 법무법인 태백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이동준과 겨뤘지만 끝내 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권율은 난무하는 배신과 반전 속에서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강정일을 소화해내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권율은 "강정일로 사는 동안 늘 힘들었다"며 "실제 삶과 극 중 삶을 잘 구분한다고 자부했었는데 '귓속말'을 하면서는 좀 예민했다. 어느 때보다 분노했고, 슬프게 울며 집중했다. 마지막에 무릎 꿇고 주저앉은 것은 진심이었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또 "현장에서 대본을 받으면 매회 공수가 바뀌어 있어 두려움도 많았다"며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행동했는데 나중에 또 당하면 너무 우스꽝스러워지는 게 아닐까, 또는 이렇게 당했는데 다음 회에서 또 뻔뻔하게 등장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늘 고민이었다"고 덧붙였다.
2008년 영화 '비스티보이즈'로 데뷔한 권율은 반듯한 외모 때문에 한동안 선한 역할만 맡았지만 지난해 tvN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와 영화 '사냥' 등에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고 '귓속말'에서 그동안 쌓아온 악역 본능을 거침없이 발휘했다.
"제 개인에 대한 칭찬도 감사하지만 작품이 잘 된 것이 가장 기뻐요. 특히 박경수 작가님이 매회 '악은 성실하다', '죽은 연꽃보다 살아있는 잡초가 낫다' 등 주옥같은 대사들을 주시고, 끊임없는 서스펜스를 펼쳐내는 것에 정말 놀랐죠."
그는 "악역을 연기할 때 확실히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서도 "그런데 '귓속말'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감히 재밌다는 말은 못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또 "제 피부가 창백하기도 해서 이번에 사람이 아닌 뱀파이어처럼 보인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귀신보다도 더 센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권율은 함께 호흡한 배우들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보영 선배님은 워낙 베테랑이신데 편안함 속에 리더십이 있어서 다들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이상윤 선배님은 현장에서 한 번도 찡그린 적이 없을 정도로 젠틀하고 다정다감하셨고요. 박세영 씨는 어린데도 힘든 역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지난 10년간 8편의 드라마와 15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연기의 폭을 넓혀온 권율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연기하면서 부침도 참 많았지만 언젠가는 대중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때가 오리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정말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앞으로도 자신을 믿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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