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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꼭꼭 숨은 ‘리피호’…한국기자들과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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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굳게 닫힌 중국 축구대표팀 훈련장. 5m 높이의 장막으로 가려놨다. 창샤=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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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 축구.’ ‘판타지스타(혼자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선수) 혐오자.’

축구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마르첼로 리피(69) 감독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근면축구’는 11명 전원이 공격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뜻하고 ‘판타지스타’ 혐오자‘는 이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 선수는 아무리 뛰어나도 배제하는 선발 기준을 의미한다. 리피 감독이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와 AC밀란 사령탑 때 이탈리아에서 ’판타지스타‘로 추앙 받는 로베르토 바지오(50)를 중용하지 않아 유래한 말이다. 그는 규율도 매우 엄격한 편이다. 이탈리아대표팀 감독시절 실력은 뛰어나지만 태만한 사생활로 논란을 일으킨 안토니오 카사노(35)를 단 한 번도 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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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 월드컵 4강을 안긴 거스 히딩크(71) 감독이 있다면 중국에는 리피 감독이 있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1996년)와 월드컵(2006년)을 모두 제패한 최초의 감독이다. 2012년 중국 프로축구 광저우 헝다 지휘봉을 잡고 정규리그 3연패,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2013년) 우승을 차지해 ‘대륙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중국축구협회는 자국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초반 4경기에서 1무3패로 최하위로 떨어지자 작년 10월 리피 감독에게 ‘SOS’를 쳤다. 리피 감독은 지난 11월 카타르와 최종예선 5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다. 오는 23일 창샤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벌어질 한국과 최종예선 6차전에서 반드시 첫 승을 따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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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훈련 시간이 끝난 뒤 허룽 스타디움 문 틈 사이로 겨우 찍은 중국대표팀 훈련 모습. 창샤=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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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창샤에 소집돼 담금질 중인 리피 감독의 속살은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국대표팀은 21일 허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 바로 옆 보조경기장에서 공개훈련을 소화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공개 훈련 중 최소 15분은 모든 취재진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은 허탕을 쳤다. 5m높이의 장막에 가려 있는 훈련장에 도착했지만 경비들이 막아 섰다. 이들의 안내에 따라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통과해 날듯이 달려 보조구장 입구에 도착했지만 15분 공개 시간이 이미 다 끝난 뒤였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한 한국 기자들은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중국의 정확한 훈련 시간과 장소, 출입 동선 등을 사전에 알려달라 요청했지만 모든 정보는 불투명했다. 경기장 안팎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중국 기자들만 초반 15분 훈련을 본 뒤 막 철수한 상황이었다. 국내 취재진들이 잠시라도 훈련을 볼 수 있게 해 달라 요청했지만 철문은 굳게 닫혔다. 중국대표팀은 경기 전날인 22일 훈련은 아예 비공개로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리피호의 ‘진가’는 경기 당일에서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축구협회는 리피 감독이 단순히 월드컵 본선 진출을 넘어 중국 축구의 ‘큰 그림’을 그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안방에서 보기 좋게 ‘공한증’을 깨고 상승 분위기를 타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CCTV 왕난 기자는 “리피 감독이 부임하며 중국대표팀은 자신감이 상당히 올라와 있다. 지금 당장 월드컵 본선 행은 어려울 수 있지만 리피 감독은 분명 중국 축구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

‘내가 감독 중에 넘버원이라고? 말도 안 된다. 나는 넘버 원 팀의 감독일 뿐이다.’

리피 감독이 남긴 유명한 어록이다. 그가 월드컵 문턱에서 늘 좌절하는 중국대표팀을 넘버원으로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창샤=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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