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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의 소설 <정글북>(1894)은 120여년의 세월 동안 실사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수차례 각색돼 인기를 끌었다. 정글의 늑대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소년 모글리의 모험담은 많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9일 개봉하는 디즈니사의 영화 <정글북>(연출 존 파브로)은 21세기 영화의 테크놀로지로 19세기 원작의 골격을 장식한 작품이다. 간혹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테크놀로지를 과시하는 데 몰두하다가 영화의 전체적 균형감을 깨는 경우도 있지만, <정글북>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사나운 늑대들이 작은 소년을 긴박하게 추격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 도입부에서 드러나듯, 소년 모글리(닐 세티)는 영화 내내 누군가에게 쫓기는 신세다. 정글 속 인간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호랑이 쉬어칸(이드리스 엘바)에게, 모글리로부터 ‘붉은 꽃’을 얻으려는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 루이(크리스토퍼 워큰)에게 쫓긴다. 모글리는 쉬어칸으로부터 도망치다가 질주하는 물소떼 한가운데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한다. 이런 수차례의 추격전은 <정글북>에 액션의 긴박감과 모험영화로서의 특성을 새겨넣는다.
몇 차례의 추격전 사이에는 여러 동물들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흑표범 바기라(벤 킹슬리)는 인간 모글리가 정글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멘토 역할을 한다. 안전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 때로 깐깐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규율 덕에 모글리는 생명을 지킨다. 반면 곰 발루(빌 머레이)는 게으르고 낙천적이다. 바기라와 정반대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는 발루는 모글리에게 삶의 즐거움과 낭만을 깨닫게 한다. 늑대들의 우두머리 아킬라(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집단 생활의 규율을 강조한다. 결국 이 세 짐승은 소년 모글리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삶과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할 여러 요소를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 제작진은 동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작업, 모션 캡처 기술, 실사 촬영 방식을 함께 사용했다. 덕분에 동물들의 표정이나 동작은 진짜 동물 같으면서도 사랑, 우정, 질투, 욕망, 분노 같은 인간적 감정까지 표현한다. <정글북>의 신선한 테크놀로지가 드러나는 부분은 추격전이 아니라 오히려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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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에서 드러나듯,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의 노래가 섞인 뮤지컬 형식의 장면들은 디즈니사의 장기다. <정글북>에도 몇 차례 노래가 나온다. 노래와 각 동물 특유의 동작이 어울린 장면은 멋진 쇼를 보듯 즐겁다. 하지만 영화 전체의 서사가 이런 특출한 장면들의 묶음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관객은 하나의 굵직한 이야기가 아니라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기억하고 극장을 나설 가능성이 높다. ‘어린이용’이라는 원작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정글북> 제작진이 단일하고 완결성 있는 서사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이 <정글북>에 국한된 전략인지, 서사 없는 장면만으로도 관객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자신감인지는 알 수 없다.
애니메이션 명가로 이름 높았던 디즈니는 지금 실사 영화로도 가장 뜨거운 스튜디오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일찌감치 인기를 끌었고,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뒤 내놓은 <어벤져스> 같은 슈퍼히어로물이 연전연승하고 있다. 루카스 필름을 인수한 뒤에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해 성공을 거뒀다. <정글북> 역시 앞서 개봉한 북미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에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