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허웅 부자의 유쾌한 대화
아들 올스타 투표 1위 됐단 소식에
“전국 돌면서 명함이라도 돌렸냐”
“나이 드신 아빠와 1대1 대결 해볼 만”
“술·담배 끊으면 너 정도는 그냥 이겨”
허재는 29일 아들 허웅과 숙소 근처 갈대밭을 걸으며 조언을 해줬다. 허재는 “골프로 치면 레슨 프로가 드라이브 자세를 한 번 잡아주는 정도”라며 동작을 직접 선보였다. 허재는 외투를 입지 않은 아들에게 “점퍼 벗어줄까?”라고 묻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고양=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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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전국을 돌면서 명함이라도 돌렸냐?”
허재(50) 전 KCC 감독이 프로농구 올스타전(내년 1월 10일·잠실실내체육관) 팬투표 1위에 뽑힌 장남 허웅(22·1m86cm·원주 동부)에게 농담을 건넸다. 허웅은 지난 21일 발표된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5만518표를 받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선수가 됐다.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이라 불렸던 허재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팬투표 1위를 아들이 해낸 것이다. 올해 팬투표는 1988년생을 전후로 시니어팀과 주니어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젊은 선수 중 가장 인기가 많은 허웅이 많은 표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시즌 평균 4.8득점에 그쳤던 허웅은 올시즌 국내선수 득점 5위(12.85점)에 오르며 동부의 상승세(4위·20승14패)를 이끌고 있다. 잘생긴 외모까지 갖춰 인기가 높다.
29일 동부의 원정숙소인 경기도 고양 엠블 호텔을 찾은 허재는 “웅이가 느닷없이 올스타 1위에 뽑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동부 센터 김주성(36)은 “웅이는 우리 팀에서 아이돌 같은 인기인”이라며 웃었다. 허재는 퉁명스럽게 “아이돌은 무슨, 파이터가 돼야지”라고 맞받았다. 말은 거칠게 해도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더 없이 인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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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투표 1위로 올스타에 뽑힌 걸 축하한다.
허웅=“얼떨떨하다. 작년보다 실력이 늘어 팬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허재=“올스타전 투표가 2001년 시작됐는데 당시 난 노장이었다. 이상민·우지원·서장훈 등에게 최고의 자리를 물려준 뒤였다.”
- 아버지가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본적이 있나.
허웅=“97~98시즌 기아 시절 챔피언 결정전 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손목이 골절됐는데도 투혼을 발휘해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갔다. 기아가 준우승 팀이었는데도 아버지가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지금은 나이가 드셨으니 아버지와 1대1 대결도 해볼 만 하다.(웃음)”
허재=“야, 내가 술·담배 끊고 열흘만 운동하면 너 정도는 그냥 이겨. 너, 뼈가 부러질 수도 있어!”
- 2004년 아버지가 동부에서 은퇴했는데.
허재=“2002년 삼보(동부의 전신)에 나보다 열네살 어린 김주성이 입단했다. 그 때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주성이가 지금 열네살 어린 웅이와 함께 뛰고 있다. 주성이가 웅이에게 똑같이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했다더라. 지난 시즌 KCC 감독일 때 신인 드래프트 4순위로 웅이를 뽑을 수 있었지만 다른 선수를 선택했다. 부자(父子)가 한 팀에서 뛰면 서로 힘들었을 거다. 5순위로 동부에 뽑혀 김주성과 김영만(43) 감독으로부터 잘 배우고 있다. 운 좋은 거지.”
- 허웅은 노력파라고 들었다. 김영만 감독이 “웅이가 한밤에 숙소에서도 드리블 훈련을 하더라”고 말하던데.
허재=“너 잔머리 쓰냐? 감독 옆방에서 일부러 그런 거 아냐?”
- 허웅과 둘째인 허훈(20·연세대)도 용산중·고와 연세대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허재="내가 2005년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을 때 두 아들이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처음엔 반대했지만 아이들이 농구를 좋아해 두손을 들었다. 둘 다 청소년대표팀에 뽑혔는데 일부 사람들이 ‘허재 아들이라서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오해했다. 가슴이 참 아팠다.”
허웅="색안경을 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더 노력했다. 지금은 아버지 아들이란 게 자랑스럽다. 아버지에게서 농구를 배울 수 있는 건 행운이다.”
- 지난 8월 허훈이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
허재="웅이는 과묵한데, 훈이는 까불까불하다. 나와 달리 둘 다 오른손잡이다. 슈팅가드 웅이는 ‘사마귀 슈터’라 불린 김영만처럼 차곡차곡 득점을 올린다. 포인트가드 훈이는 배짱 두둑한 플레이를 펼친다. 둘 다 한참 멀었다. 루스볼(어느 팀의 공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태의 공) 하나라도 잡으려는 근성을 가져야 한다.”
- 아들은 아버지를 얼마나 닮았나.
허재="웅이는 나처럼 슛자세의 일관성이 있다. 파워와 점프가 더 좋아져야 하지만.”
허웅="아버지 폼을 따라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버지 폼은 정말 예쁘더라.”
허재="예쁘긴 인마, 멋있지.”
김주성은 “스텝을 밟다가 멈춰 수직으로 올라가 슛을 하는건 허재 형밖에 못 한다”고 허재를 거들었다. 김영만 감독은 “허재형 현역 시절처럼 웅이는 결정적일 때 한방을 터뜨리는 클러치 슈터”라고 허웅을 칭찬했다.
- 농구인들은 “두 아들은 아직 허재의 반도 못 따라간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김영만 감독은 “200년이 지나도 대한민국에서 허재 같은 선수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허웅="홈구장에 아버지의 영구결번 번호(9번)가 새겨진 유니폼이 걸려있다. 외국인 선수들도 ‘네 아버지 유니폼이냐’며 놀란다.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를 느낀다. 나도 은퇴할 때 아버지 유니폼 옆에 내 유니폼이 걸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허재="요즘은 ‘농구대통령’이 아닌 ‘웅이 아버지’라 불린다. 난 이제 잊혀지는 사람인데 아들 덕분에 이런 인터뷰도 하게 됐다. 두 아들이 아빠를 넘어선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고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박린.오종택 기자 Jongta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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