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털’에 웃고 ‘털’에 우는 ‘털털한 선수들’

경향신문
원문보기

‘털’에 웃고 ‘털’에 우는 ‘털털한 선수들’

서울맑음 / -3.9 °
‘털’은 인류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단백질로 구성된 털은 인류의 진화과정 속에서도 체온 유지, 외부 자극으로부터 신체 보호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여전히 살아남았다.

‘털’이 언제나 환영받는 건 아니다. 영국의 테니스 스타 앤디 머레이는 머리카락이 걸리적거렸다. 지난 1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월드투어 파이널 라파엘 나달(5위·스페인)과의 경기 도중 벤치에서 가위로 자신의 앞머리를 잘라냈다. 머레이는 “머리카락이 자꾸 눈에 거슬려서 잘라냈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 ‘털’로 화제가 된 선수가 또 있다. 237주 동안 세계 1위를 지켰던 로저 페더러(스위스)다. 한때 면도기 회사의 광고 모델이었던 페더러가 대회 기간 수염을 길렀다. 페더러는 “(대회가 열리고 있는) 런던의 독특한 물 때문이다. 아침에 깎았는데 오후에 엄청 자랐다”고 농담을 한 뒤 “계속 이기면 수염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너무 길어지거나 딸아이가 싫어하면 자르겠다”고 말했다.

‘털’이 스포츠 팬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다. 미 프로풋볼(NFL) 신시내티 벵갈스의 전 수비수 데본 스틸의 네 살배기 딸 레아 스틸은 소아암에 걸렸다. 레아는 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데본 스틸은 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두 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등에 머리카락이 풍성한 레아가 앞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문신을 새겼다. 현재 레아는 암세포를 제거한 뒤 재발 방지를 위해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털’이 부족해 서러운 선수들도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킹’(King) 르브론 제임스는 꾸준히 모발이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엠(M)자형 탈모는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는 모발 이식을 한 뒤 자신감(?)을 찾았다고 한다.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아리언 로번(31)은 부족한 머리숱 때문에 노안으로 유명하다.


스포츠 스타의 ‘털’은 종종 경매에도 올라온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오티스는 자선 경매에 자신의 수염과 수염을 깎을 때 쓴 면도기를 내놓았다. 1만877달러(약 1200만원)에 팔렸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미키 맨틀(1997년·6900달러),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2009년·780달러)의 수염도 경매에 나온 적이 있다.

한국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획일화된 ‘까까머리’(남성)나 ‘단발머리’(여성)는 한때 ‘단체 문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여자축구 이민아(현대제철)는 단발머리보다 긴머리가 경기할 때 편하다고 했고, 전가을(현대제철)은 노란색, 빨간색으로 색을 바꿔가며 염색을 한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김병지(전남)의 염색머리·꼬랑지머리 이후, 대략 2000년을 기점으로 프로 선수들이 헤어스타일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중·고교 학원 스포츠에선 단체로 삭발하는 팀이 적지 않다. 머리카락으로 선수 개개인을 통제하는 건 군대 문화의 잔재”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