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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이중섭… 절망 속 예술로 피워낸 가족애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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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이중섭… 절망 속 예술로 피워낸 가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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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10주년 ‘쓰다, 이중섭’展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30일 개막
이중섭, 엽서화 ‘연꽃 봉오리를 든 남자’(1941). 종이에 펜, 채색, 9×14㎝. /개인 소장

이중섭, 엽서화 ‘연꽃 봉오리를 든 남자’(1941). 종이에 펜, 채색, 9×14㎝. /개인 소장


구름에 둘러싸인 태양을 배경으로 푸른 수탉과 붉은 암탉이 춤을 추고 있다. 1955년 화가 이중섭(1916~1956)이 일본에 있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1921~2022)를 그리워하며 그린 ‘환희’. 닭을 의인화해 부부의 사랑을 표현한 역작이다. 2014년 서울을 찾은 야마모토 여사는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국민 화가’ 이중섭 탄생 110주년을 맞아 특별전 ‘쓰다, 이중섭’이 서울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30일 개막한다. 조선일보사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비극적 삶에도 가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놓지 않은 ‘인간 이중섭’에 주목한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은지화 두 점 ‘가족 1’ ‘가족 2’, 아내와의 재회를 꿈꾸며 그린 유화 ‘환희’를 비롯해 은지화, 유화, 엽서화, 편지화 등 80점을 선보인다.

이중섭, 유화 ‘환희’(1955). 종이에 유채, 29.5×41㎝.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유화 ‘환희’(1955). 종이에 유채, 29.5×41㎝. /이중섭미술관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쓰다’. ‘텍스트 힙(text hip·텍스트를 읽고 쓰는 행위를 멋지게 여기는 문화)’이 문화 현상으로 떠오르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새로운 시각으로 이중섭을 조망한다. 이중섭이 ‘쓴’ 편지와 엽서를 중심으로, 이중섭의 인생을 다시 ‘쓰며’ 추모한다. 이중섭의 생애와 예술 장르에 따라 ▲쓰다, 사랑을(엽서화) ▲쓰다, 절절함을(편지화) ▲새기다, 그리움을(은지화) ▲쓰다, 시대를(유화, 드로잉) ▲쓰다, 역사로(신문 아카이브) ▲쓰다, 나의 이야기(체험 공간) 등 6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이중섭, '말을 타는 사람들'(1941). 종이에 채색, 9×14cm. /개인 소장

이중섭, '말을 타는 사람들'(1941). 종이에 채색, 9×14cm. /개인 소장


이중섭, 은지화 ‘가족 2’(연도 미상). 은지에 새김, 8×14㎝. /개인 소장

이중섭, 은지화 ‘가족 2’(연도 미상). 은지에 새김, 8×14㎝. /개인 소장


시작은 일본 유학 시절 훗날 아내가 된 연인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들이다. 청년 이중섭은 1940년 12월부터 1943년 여름까지 14×9㎝ 크기의 작은 관제엽서에 사랑을 담아 보냈다. ‘엽서화’라고 불리는 이 그림들은 오직 단 한 사람, 연인 마사코를 위해 그린 것이다. 예술 실험과 순수한 사랑이 결합된 청춘의 기록이다. 이어지는 편지화 섹션은 1952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이중섭이 겪은 고독한 시기를 다룬다. 글과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진 편지들은 단순한 서신을 넘어 절절한 사랑과 상실을 담은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담뱃갑 은박지를 긁어 완성한 은지화 섹션은 극한의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이중섭의 창조적 에너지를 보여준다. 유화 섹션에는 ‘환희’를 비롯해 ‘바다가 보이는 풍경’, ‘파란 게와 어린이’ 등 이중섭의 조형 실험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전시됐다.

이중섭, '아들 태성에게 보낸 편지'(1953). 종이에 펜, 채색, 26.4×20.2cm. /개인 소장

이중섭, '아들 태성에게 보낸 편지'(1953). 종이에 펜, 채색, 26.4×20.2cm. /개인 소장


옛 신문 속 이중섭을 만나는 독특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신문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첫 개인전 기사, 1956년 부음 기사 등 조선일보 아카이브를 통해 70여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은 관람객이 직접 편지를 쓰는 체험 공간. 이중섭이 살았던 서귀포 초가의 단칸방과 부산 범일동 판잣집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편지를 쓰며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중섭, 은지화 '가족1'(연도 미상). 은지에 새김, 10×14cm. /개인 소장

이중섭, 은지화 '가족1'(연도 미상). 은지에 새김, 10×14cm. /개인 소장


이번 전시는 조선일보사와 이중섭미술관이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함께 연 ‘이중섭, 백년의 신화’ 이후 10년 만에 다시 여는 특별전이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는 국내 화가 개인전으로 최다 관람객(25만명)을 기록하며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전시 관계자는 “인공지능의 범람으로 아날로그의 향이 옅어져 가고 사랑도 이별도 금세 휘발하는 감정의 인스턴트 시대에, 이중섭이 손으로 사각사각 쓴 애잔한 그리움이 위로를 건넬 것”이라고 했다. 6월 14일까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8000원.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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