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인터뷰
/Jo Metson Scott |
“이것이 분명히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
영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줄리언 반스(80)는 신간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다산책방)에 이렇게 썼다. 지난 22일 전 세계 18국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나오기 전부터 문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거장의 ‘은퇴 선언’을 대신하는 책이라서다.
원제는 Departure(s). 1980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반세기 가까이 문학에 투신한 그가 작가로서 서사를 스스로 매듭짓는다. 이보다 명징한 작별 인사가 어디 있을까. “가능한 한 오래 사물을 관찰하고 싶다”는 문장이 눈에 밟힌다.
70대에 혈액암 진단을 받은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화자(話者)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친구 스티븐과 진의 어긋나는 인연을 통해 기억과 진실의 문제, 소설로서 가능한 진실에 가닿으려는 시도 등을 다룬다. 마지막 소설을 펴낸 반스에게 서면으로 질문을 보냈다. 그는 “창밖으로 어둡고 축축한 런던의 저녁이 펼쳐져 있다”는 인사와 함께 답을 보내왔다.
/다산책방 |
-근황이 궁금하다.
“지금 나는 노란색으로 칠한 서재 책상에 앉아 있다. 지난 한 달간 거의 계속 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새 책과 관련한 인터뷰와 대화를 하느라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인터뷰하고 싶어 한다는 건 그 반대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화자가 줄리언 반스다. 이번 작품은 얼마만큼 소설인가.
“이번 책은 하이브리드(hybrid)다. 출판사나 서점은 이런 형식을 하나의 문학적 범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가에 꽂기 위해 반드시 픽션 아니면 논픽션이라고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들에게 이런 식의 고통을 안긴다. 이 책은 픽션·논픽션·자전적 글쓰기가 섞여 있다. 소설 속 줄리언 반스는 나 자신이기도 하고, 책 속의 다른 허구적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는 가상의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인데 길지 않다.
“책 속에서 나는 한 유명 작곡가의 말을 인용했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그는 ‘음악을 덜 쓰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어쩌면 나 역시 단어를 적게 쓰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이 (소설로서는) 마지막이지만, 앞으로 몇 년간 에세이나 저널리즘 글은 계속 쓰려 한다.”
-자신의 작품 중 최고를 꼽는다면.
“그런 식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작품마다 미덕과 결함이 있다. 예전에는 ‘내 최고의 소설은 다음 작품일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젠 그 말을 못 하게 됐다.”
-‘기억’은 당신의 주요 화두였다.
“흔히들 말하듯 ‘기억은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무엇이 될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육신만 남게 될 것이다.”
-기억에 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어 왔나.
“예전에는 우리의 기억이 단단하고 거의 만질 수 있는 것처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으며 다시 꺼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기억은 취약하고 가변적이다. 다시 불러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그래서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일수록 사실 가장 믿기 어렵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기억이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삶과 픽션은 구분되는가.
“철학자인 내 형은 기억이 본질적으로 상상력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상상력과 픽션 역시 과학의 진실만큼이나 진실한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 어느 임상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 셰익스피어가 희곡에 묘사한 정신적 장애의 양상이 완벽하게 정확하다고.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통해 같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기억은 때론 고통이다. 그러나 망각도 괴롭다. 둘 중 무엇이 더 두려운가.
“단연 망각이다. 얼마 전에는 내 마지막 책의 제목을 잊어버렸는데, 그게 몹시 괴로웠다. 신경과 전문의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서 ‘신경과 전문의’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적도 있다. 왜 내 뇌는 나에게 이런 짓을 할까? 이런 일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소설 속 문장들. 두번째 인용문 중 '당신'은 독자를 가리킨다. |
-당신에게 독자는 어떤 존재였나.
“독자가 없다면 나의 글쓰기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읽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완성되지 않는다. 읽히지 않는 글쓰기는 정신적 자위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
-당신의 새 소설을 더는 보지 못할 독자들에게 전할 말은.
“작가에게는 두 번의 떠남이 있다. 마지막 책을 완성하고 출간하는 것. 그리고 죽음. 두 번째에 대해 많은 사람이 기뻐하리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어차피 나는 알지 못할 테지만. 어쨌든 나는 독자들과 훌륭하고 풍요로운 관계를 맺어왔다. 스물다섯 권가량의 책을 썼고, 아직 당신이 읽지 않은 책이 한두 권쯤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읽는 일이 노년의 큰 기쁨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람이 변하면, 독자의 마음속에서 책도 변한다. 책 읽기란, 끝나지 않는 일이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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