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24] 겨울 너머 봄

조선일보 문지혁 소설가
원문보기

[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24] 겨울 너머 봄

서울맑음 / -3.9 °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요즘 같은 혹한 속에서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과 자원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제 막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 네 살 둘째는 종종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하는데, 며칠 전에는 저녁을 먹고 나서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추운데 동물들은 밖에서 자면 어떡해?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에게 겨울은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계절일 뿐 아니라 일종의 은유로도 작동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카프카다.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1904년 1월 27일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는데, 여기서 겨울이란 굳고 경직된 내면의 사고, 타성, 편견, 고립, 무감각 등을 상징한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알베르 카뮈의 말은 어떤가.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무적의 여름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1954년에 출간된 그의 에세이 ‘여름’에 적힌 이 문장은, 지독한 고립 속에 파리를 떠났던 카뮈의 개인적 상황과 맞물려 역설적으로 읽힌다. 외부의 환경이 아무리 혹독해도 그 내면에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아니, 그 가혹한 환경만이 내밀한 보물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역설.

하지만 추운 계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내가 늘 되뇌게 되는 문장은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것이다. “겨울이 온다면, 어찌 봄 또한 멀겠는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서풍에 부치는 송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린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시인으로서의 위기감 속에서 셸리는 내면으로 침잠하는 대신 세상을 향해 선언한다. 겨울과 봄은 연결되어 있다고. 나도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봄은 우리 모두에게 올 거라고. 꼭.

[문지혁 소설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