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일 정치부 기자 |
하지만 장 대표 개인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장 대표는 단식 직전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었다. 연초 쇄신안 발표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중도보수 성향의 인사, 유권자의 비판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당 대표 취임 이후 20%대 중반(한국갤럽 기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당 지지율은 지방선거 앞 장동혁 체제에 대한 당내 의구심을 키웠다.
무엇보다 당 윤리위원회의 한동훈 전 대표 심야 제명 결정은 장 대표와 한 전 대표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에 있던 당내 인사들마저 장 대표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한 전 대표에게 비판적인 중진 의원들도 “제명은 과했다”고 공개 목소리를 냈다.
장 대표의 단식은 한 전 대표 제명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점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국면 전환용 단식이라는 비판이 친한계에서 나왔다. 하지만 단식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장 대표는 보수진영 결집을 이룬 모습을 만들어냈다.
장 대표에게 비판적이던 소장·개혁파 모임 ‘대안과 미래’가 장 대표 단식을 지지했고, 제명을 비판했던 중진 의원들이 장 대표 곁을 지켰다.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뿐 아니라 국민의힘 소속 현역 광역단체장들은 모두 장 대표를 찾았다. 노선이 다른 유승민 전 의원이 장 대표 손을 맞잡았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의 공조는 더욱 선명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년 만에 국회 본청을 들게 했다.
하지만 착시는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장 대표 단식 지지와 장 대표 노선에 대한 지지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식 그 이후’가 단식 과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장 대표를 향한 비판의 본질인 윤 전 대통령 절연,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쇄신, 한 전 대표 제명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 잠시 지연됐을 뿐 단식 전에서 나아간 건 없다.
이 때문에 벌써 의원들 사이에선 “변하지 않으면 우호적 여론은 보름짜리 여론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장 대표가 지난해 12월 ‘24시간 필리버스터’까지 완수하면서 의원들의 결집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도, 다시 강성 지지층에 치우친 행보로 합리적 성향의 김도읍 정책위의장을 떠나보낸 일을 그 사례로 든다.
장 대표가 기력을 회복할 때쯤엔 한 전 대표 제명 문제, 윤 전 대통령 선고와 그에 따른 장 대표의 입장, 중도 외연 확장과 보수 통합 방안을 묻는 질문이 밀린 청구서처럼 날아들 것이다. 보수를 결집한 에너지를 쇄신과 통합에 쓸지, 목소리 큰 강성 지지층을 위해 쓸지는 전적으로 장 대표에게 달렸다. 다만 장 대표가 강성 지지층을 위한 행보를 할 때면 리더십 위기를 맞았던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김준일 정치부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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