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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역사의 올바른 편, 멍청이도 안다

조선일보 선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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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역사의 올바른 편, 멍청이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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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알래스카 천연가스 사업, 韓日덕에 전례없는 자금 확보"
시진핑 주석이 한국에
올바른 편에 서라고 했다
해방 후 한국의 번영은
미국 편에 섰기 때문이다
중국이 언제 올바랐다고
한국에 훈계질인가
지난 2014년 1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한반도의 위성사진/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난 2014년 1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한반도의 위성사진/미국 항공우주국(NASA)


손주에게 평생 한 번 선물을 준다면? 연말 모임에서 투자 전문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세 번 들었다. 손주 볼 나이의 사람들 모임에서 요즘 유행하는 이야기인 듯했다. 증여세 면세 한도 내에서 ‘나스닥 100’을 사주라는 것이다. 나스닥 100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100개 주식을 모은 지수를 말한다. “지금 1000만원 어치 펀드를 사주고 묻어두면 20년 후 2억원을 선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계산이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나스닥 100은 연평균 15%씩 올랐다. 주가는 복리다. 지금 1000만원을 투자하면 20년 후 2억원 가까이 기대할 수도 있다. 20년을 묻어두란 말엔 미국이란 시스템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다. AI의 개념과 구조를 만들고, 학습을 통해 지능을 만들고, 하드웨어를 구축해 세상을 도약시킨 미국의 혁신 시스템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한국 주식시장의 약진도 그곳이 출발점이다.

S&P 500 투자는 현재의 미국을, 나스닥 100 투자는 미래의 미국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작년 한 해 한국인이 산 ‘미국’은 100조원 어치. 그동안 누적액은 250조원이다. 손주에게 주는 선물처럼 장기 투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무도하기 짝이 없지만 미국 국가 시스템의 본성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신뢰가 아니다. 중국 AI 인재가 연구실에서 날밤을 새워도 신뢰만큼은 미국을 따라갈 수 없다. 전혀 다른 차원이지만 요즘처럼 내 삶의 언저리에서 ‘친미(親美)’를 체감한 적이 없다.

몇 년 전 이한수 본지 선임기자가 쓴 ‘가장 불행한 세대’란 칼럼을 공감하면서 읽었다. 1580년 생을 예로 들었는데 10대에 임진왜란을, 40대에 정묘호란, 50대에 병자호란을 당한 세대다. 가혹한 운명이지만 사실 그때는 그런 세상이었다. 일본도 전란의 막바지였고, 중국은 전란의 초입에 있었다. 유럽은 얼마 후 30년 전쟁의 지옥을 겪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은데도 가장 불행했던 세대는 한국사의 어디쯤일까. 북한에서 태어난 1960년대 생을 꼽고 싶다.

나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아버지가 해방 직후 월남하지 않았다면 북한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북한의 1967년은 마지막 정적이 제거되고 김일성 개인의 족벌 권력만 남은 해라고 한다. 정치는 사라졌고, 경제는 가난만 남았다. 수령님 찬양이 유일한 문화였고, 종교가 됐다. 그렇게 자란 북한의 1967년생은 20대 후반 수백만명이 죽었다는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북한에서 태어났으면 십중팔구 나는 지금 이승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해 한국은 WTO의 전신인 GATT에 가입했다. 포항제철 기공식도 그해 열렸다. 미국 중심의 산업·무역 생태계에 들어간 것이다. 1967년생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민주화가 됐고 올림픽이 열렸다. 해외여행도 자유화가 됐다. 경제위기도 겪었지만 취직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고, 집값도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돈으로 사들이고 있다. 한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만큼 행복한 세대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설 같은 이야기다. 휴전선을 경계로 빛과 어둠이 갈리는 한반도 야간 사진만큼 동세대의 행복과 불행이 극단적이다. 원인 역시 한반도를 가르는 불빛만큼 명확하다. 북한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섰고, 한국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편에 섰고, 한국은 미국과 일본 편에 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수탈적 제도을, 한국은 포용적 제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선동에 흔들리지 않고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해 나라를 끌고 간 현명한 지도자를 가진 것도 한국의 행운이었다. 엄청난 희생이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을 위로해 통합을 도모한 것도 한국의 지도자들이었다. 북한의 불행은 모든 면에서 지도자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얼마 전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인데, 백번 생각해도 중국 주석이 할 훈계는 아닌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작년 11월 경주 정상회담 때 선물 받은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통령, 김혜경 여사, 시 주석, 평리위안 여사. /뉴스1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작년 11월 경주 정상회담 때 선물 받은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통령, 김혜경 여사, 시 주석, 평리위안 여사. /뉴스1


6·25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다. 1970년 중국이 이른바 ‘저우 4원칙’을 내세워 한국 경제를 세계 경제에서 도태시키려고 했을 때, 한국의 구세주는 미국이었다. 개혁·개방 후 중국이 한국 경제와 기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의 기술을 빨아 먹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대부분 산업에서 중국은 한국을 집어삼키려 한다. 미국의 제재가 없었으면 한국 반도체는 지금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이 다른 점은 중국은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국 시스템의 본성이다. 경제 논리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정책에 의해 급변침하는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미국을 사듯이 중국 주식을 사지 않는다. 아무리 성장해도 중국은 시장 논리에 따른 혁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번영은 미국 편에서 그들의 경제 논리와 혁신 시스템을 배웠기 때문이다. 북한처럼 중국 편에 섰다면 밤하늘의 한반도 위성 사진은 온통 어둠이었을 것이다. 중국이 언제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섰다고 한국에 그런 훈계질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선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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