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헤리티지재단 전경. /AP 연합뉴스 |
지난해 7월 콜로라도주(州) 아스펜으로 취재를 갔다가 낭패를 봤다.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아스펜연구소가 주최하는 포럼에 패널로 참석하기로 돼 있던 인도·태평양 사령관 등 미 장군 10여 명이 행사 하루 전 집단 불참을 통보한 것이다. 이들을 막아선 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엄포였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초당파를 지향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포럼에 대해 “세계주의라는 악(惡)을 조장하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에 트럼프 행정부는 관심이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이후 국방부(전쟁부)는 고위 인사 섭외 창구를 단일화해 버렸다.
지난해 작고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에는 정부라는 하나의 산업이 있고, 아이디어라는 원재료를 가지고 법과 규칙을 생산한다.” 한때 워싱턴 DC의 수많은 싱크탱크는 사회 문제를 분석·연구해 정책 해법을 제시하고, 일부는 그 아이디어를 정부·의회로 들여보내 현실로 구현했다. 정권이 바뀌면 실전을 경험한 이들이 다시 싱크탱크로 돌아와 정책 담론을 형성하고 의제 설정에 기여했다. 역대 모든 정부가 이들의 보고서와 제안을 참고했고, 필요하면 불러 밤새 토론했다. 혹자는 이를 ‘회전문 인사’라 비판했지만 선순환이 주는 순기능이 더 컸다. 그 진가를 아는 기업과 개인 후원자들이 지갑을 열어 정치로부터 독립된 싱크탱크 생태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싱크탱크의 힘은 예전 같지 않다. ‘목소리만 크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정치 양극화 시대에 복잡한 장문의 보고서를 읽을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트럼프 정부가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물밑 소통마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지난달 한 포럼에 마지못해 참석하면서 이마저도 비공개로 진행했다. 영향력이 생명인 싱크탱크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와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는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대선 때 트럼프 공약집으로 통하던 ‘프로젝트 2025’를 집필해 후원금이 쇄도한 헤리티지재단에서도 적지 않은 인원이 이탈했다.
이 냉혹한 현실은 ‘본부 출장팀’이 문지방 닳게 워싱턴을 드나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 당국자나 학계 인사들이 싱크탱크 몇 군데 돌고 보도자료나 채우고 돌아가는 ‘낡은 루틴’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13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힘들게 와서 평론만 하다 돌아가는 일은 공허하다. 더 큰 문제는, 연구 독립성을 고수하는 미국외교협회(CFR) 같은 소수 기관을 제외하면, ‘한국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싱크탱크들이 우리 기업·정부를 만날 때마다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에 달라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새해에는 구태의연한 대외 업무 방식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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